서점도 좋고, 도서관도 좋다. 어쨌든 책이 아주 많은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분류가 잘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니 대형서점 아니면, 도서관이 좋다. 대형서점은 직업의 백화점이다. 없는 것이 없다. 거의 세상의 모든 직업에 대한 소개가 있다. 또한 책의 수만큼이나 많은 저자들에 대한 소개를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직업을 갖고 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쉽게 느낄 수 있다.
가급적이면 그동안 당신이 한 번 쳐다본 적도 없는 주제의 코너로 가라.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나에게는 음악, 미술, 미용, 패션, 체육, 이런 쪽이다. 그리고 그곳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 아무거나 손이 가는 대로 뽑아보라.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필요한 건 저자소개다.
난 지금도 가끔 그런 짓을 하는데, 그렇게 해보면 세상에 먹고사는 방법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주변이나 TV에서 보고 듣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훨씬 더 생생하다고 해야할까?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저자소개만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얻는 것이 많다. 아직도 내겐 신선한 경험이다.
직업 때문에 고민 중이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면 나는 기꺼이 서점을 방황하라고 권하고 싶다. 괜히 돈벌이 될 만한게 뭐가 있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인 방법이다. 거긴 세상에 모든 직업에 다 있다. 즉, 먹고 사는 모든 방법을 가장 쉽게, 돈 안들이고 볼 수 있는 곳이다.
설겆이를 하고 나니, 배수구의 음식물 거름망이 반쯤 차있는 것이 보였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가져와 거름망을 뽑아들고 음식물을 털어냈다. 털어내면서 보니, 거름망 밑부분이 어찌나 더럽던지. 찌든 때가 누렇다 못해 거의 검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으나, 비위가 약한 분들을 위해 참는다). 물론 오늘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보면서도 차마 손대기가 싫어 그 상태 그대로 원위치 시킬 뿐이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청소를 하려고 하니, 무엇으로 작업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릇을 닦는 수세미로 하기엔 안 될 일 같고. 마땅한 도구가 눈에 띠지 않았다. 결국, 그냥 휴지를 물에 적셔 초벌 작업을 하기로 했다. 휴지를 풀어 한 두번 문지르니 의외로 깨끗해졌다. 이리저리 물을 뿌려가며 쓱싹쓱싹 문질러 댔다. 한 번 문지를 때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내듯, 깨끗한 본래의 몸통을 보여준다. 닦기 시작한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거의 90%정도가 복구되었다. 손도 대기 싫어 며칠인지도 모를 시간을 방치했건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쉽게,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 짧은 작업 후에 느끼는 개운함은 생각보다 컸다.
그저 1분이면 될 것을. 매번 거름망을 비울 때마다 그것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혹시 손에 뭐가 묻기라도 할까 벌벌했었다. 사실 설겆이할 때마다 음식물을 비워내고, 배워낼 때마다 살짝 닦아주면 찌든 때 같은 것은 생길 틈도 없다. 어렵지 않게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찌든 때라는 것도 결국 하루하루의 때가 쌓인 것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우리네 인생도 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기 싫은 부분이 있다. 그것을 들여다 볼 기회가 생기면, 그저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재빨리 눈을 돌린다.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삶에도 찌든 때가 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점점 더러워져서,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다. 어느 선을 넘으면 그것은 다시 원상복구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별히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저 그 상태로 평생을 간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운명이 되어 버린다.
다행스러운 것은 개선이 불가능해 보일 뿐이지,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 말을 습관적으로 자주 한다. 정말 그러한 것인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을 찾기 보다는, 그저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하지만, 문제해결에는 사실상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무언가 손을 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검은 찌든 때가 낀 거름망에 손을 대는 것처럼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내 손이 한 번 닿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찌든 때가 벗겨져 나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변화의 과정은 매번 놀라움과 기쁨, 흥분을 안겨줄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을 결코 알 수 없다. 그저 영원토록 그 찌든 때를 바라보며, 사는 수밖에...
거름망에 찌든때가 낀 것을 볼 때마다 내가 한 짓은 베이킹소다를 이러저리 뿌려 다시 배수구에 꼽아 넣는 것이었다. 그저 깨끗하게 닦아내면 될 것을 그것을 하지 못해, 아니 하기 싫어, 단지 손 안대고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손 안대고 코를 풀려 했었다.(코풀기의 고수라면 가능할지도) 베이킹소다를 단지 뿌려놓는다고 째든때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손을 대지 않고는 처리할 수 없는 문제였다. 단 1분도 걸리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 매번 설겆이를 하고도 찝찝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해왔던 것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 속에 찝찝함을 남기고 있는, 그 찌든 때는 무엇인가??
나는 내 작품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데 그게 인기를 못 끌 때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좇아가는 식의 본질을 비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 김C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더불어 노총각 냄새도 물씬~) 김제동씨가 쓴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의 한 구절이다. 가수 김C의 인터뷰 중에서, 그의 한 마디가 인상 깊다. 1인기업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1인기업가의 삶이 직장인의 삶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물론 이것도 1인기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1인기업가의 삶은 작품을 만들는 예술가의 삶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혼을 다해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의 재능, 자신의 잠재력, 그 모든 것을 최대치에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힘들여 책을 썼는데, 코칭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그 누구도 쳐다봐주지 않을 때가 많다. 한 편으로는 내가 혼을 다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김C 같은 생각이 든다.
"이해가 안된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건데."
그러면서 또 김C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그것을 좇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
비니지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개념없는 소리 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좇아 만들어진 상품이나 서비스는 이미 넘쳐난다. 굳이 거기에 내 것을 하나 더할 필요가 없다. 난 그러한 넘쳐나는 상품과 서비스 속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색이다. 나의 재능, 나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산다는 것은 결국 나의 본연의 색깔을 찾아 그 빛을 내며 사는 것이다. 당장은 그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수 있다.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낯선 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색이 진짜 나의 색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주 매력적으로. 그것이 1인기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어쩌면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불어 <1박2일>의 나영석 PD와의 인터뷰에도 비슷한 맥락의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면 스스로가 너무 불행해져.
나: 맞아 이러나저러나 나 하는 대로 하게 되더라고,. 처음엔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고 고민하는데 결국 내 길을 가게 돼.
김: 그건 오만이나 독선이 아니라 고유의 결이야. 그 결을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해준 거잖아. 그 결을 어떻게 바꿔?
나: 요즘 시청자들은 누구보다 똑똑해. 난 그리고 그게 카메라를 통해 다 전달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면서 살이. 제대로 된 것을 보여주겠다고 속일 구멍도 없이.
택배를 보낼 물건이 하나 있어, 아무 생각없이 물건만 달랑 들고 집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택배를 보내러 왔다고 하니 내 물건은 보지도 않은 채, 대뜸 하는 말이 "박스 포장 안했으면 안되요" 였다. 물론 나는 포장을 안 한 상태였다. 우체국처럼 당연히 박스와 충격방지용 뾱뾱이(?) 비닐 정도는 준비되어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첫 마디가 그러한 것을 보니, 나 말고도 포장 안하고 물건만 들고 오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난 "아~네..." 한 마디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표정은 "아침부터 뭐 이런 개념없는 인간이 왔어?"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여기만 그런가 보다 하고 옆 블럭의 또다른 편의점,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멀리 떨어진 편의점으로 가봤다. 집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물론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내게 배려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친절하게도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이마트에 가면 박스가 아주 많이 있으니, 거기가서 포장을 해오라고 알려주었다. ㅡ,.ㅡ;;; 왕복 20분인데.
순간 "만약 당신이 손님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어떤 말을 듣기 원할까요?"하는 감정이 첨가된 코칭질문이 떠올랐으나, 그것은 그냥 마음속으로만 던지고 발길을 돌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켄 블랜차드는 여행을 하던 중,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신분증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그는 자신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그것으로 신분증을 대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단한 센스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어느 항공사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박스포장도 안한 물건을 택배로 보내겠다며 편의점을 찾는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단 한 곳, 그 유명한 허브 캘러허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에서만큼은 "아!그러시군요. 일등석으로 모시겠습니다"말하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때까지 귀빈 대접을 해주었다고.
무엇이 되는 것이고, 무엇이 안되는 것인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물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다. 물론 더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오늘 세 명의 편의점 주인(알바생으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은 한 명의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삶을 감동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기도 하다.
금요일이다. 얼마 전부터 금요일은 <위대한 탄생>을 보는 날이 되었다. 걸그룹 멤버들의 이름도 못 외우는 나이지만, 어느새 <위대한 탄생> 참가자들의 이름을 다 외우는 상황이 되었다. 매주 탈락자가 결정되는 서바이벌 형식이 스릴과 재미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더욱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매주 조금씩 성장하는 출연자들의 모습니다. 발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각자 한 편의 멋진 자기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매주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얼마나 성장을 하는지. 또 성장한 그들의 모습을 멘토와 시청자들은 어떻게 보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맛이 아주 쏠쏠하다.
처음 그들의 오디션은 재능의 경연장이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음색과 스타일을 가졌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음악적 재능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아쉽지만 다음 단계 진출을 접어야만 했다. 물론, 인간사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예외와 변수는 있었다. 재능이 덜해 보이는 이가 선택되기도 하고, 탁월한 재능을 가져보임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치는 이도 있었다. (물론 아마추어의 시각이니 그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다) 10, 20년이 넘는 음악 인생을 살아온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내공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눈으로 재능을 가진 이들을 고르고 또 골라냈다.
재능과 재능의 대결,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탁월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그들 대부분이 늘 우리 곁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지닌 재능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들이며, 그것을 빛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의 삶이 그토록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첫번째 요소, 재능의 결핍이 아닐까? 물론, 결핍이라는 표현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가진 재능을 찾지 못하고, 결핍된 것처럼 묻혀두고 산다는 말이다.
Top 12가 가려지고 생방송 체제로 바뀌면서, 이제 그들의 대결 양상은 조금 달라진 듯하다. 지금도 참가자들간에 재능과 기본기에 대한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타고난 재능을 넘어 다른 요소가 그들의 당락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순위를 결정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난는 것을 진정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지 누가 더 가수가 되길 간절히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에 서는 그 순간 모든 것과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 그 능력(?)이다. 이것을 능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위대한 능력이다. 진정성, 그것은 무대에서 완벽한 몰입을 만들어내며, 무대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고, 노래를 듣는 멘토, 관객, 시청자들과 보이지 않는 소통의 채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단순히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넘어서는 감동을 전달해준다. 이제 그들의 경쟁은 노래를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를 넘어, 감동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변했다.
우리도 누구나 인생의 드라마를 꿈꾼다. 드라마의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성장과 그를 통한 성공, 기적을 이루어내는 드라마는 바로 재능을 그 시작으로 한다. 그들의 무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 그들이 빠른 성장을 이루어내며 더 나아지는 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른다고 알고 있다. 자신은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재능 기반의 인생을 만들어나가지 못한다. 재능을 기반으로 하지 못해, 소위 싹수가 보이지 않으니 과감히 무언가에 자신의 인생을 던질 수도 없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만, 내 인생의 드라마는 시시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위대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묻혀 있는 재능을 찾아 그것을 갈고 닦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성공의 공식 "피나는 노력(?)", 그것도 재능을 기반으로 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재능을 찾아 그것에 내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그것이 탁월함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만들어 낸다. 다른 이를 감동시킬 수 없다면, 나 역시 감동할 수 없다. 내가 감동할 수 없다면 다른 이도 감동시킬 수 없다. 감동이 없는 인생은 심심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는 누구에게나 있다. <위대한 탄생>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나의 위대함을 깨워 그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를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떤가? 저 위의 이미지, <위대한 탄생> 타이틀 밑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손이 보이는가? 당신만의 <위대한 탄생>, 그것을 기대해 본다...
오랜만에 트윗을 했다. 몇 달 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켄 윌버의 <에덴을 넘어>를 읽다가, 몇 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어 그 내용을 올렸다.
1. 자기계발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 되어야 한다.
2. 인간의 성장은 전일성을 향해 나아감이며, 분리된 것을 통일시키고 흩어진 것을 다시 모으는 것이다.
새로운 통찰은 아니지만, 아직도 자기계발이란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만큼 이는 중요한 메세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의 목적에 대한 몰이해는 대중은 물론이고 전문가라 불리는 많은 비전문가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각자 용어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물질적, 사회적 성공으로 결국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언인가를 고민해 본다면, 이를 단순히 용어에 대한 정의의 차이로만 놓아두기는 어렵다.
자기계발의 목적이 성공, 그 자체여서는 안 된다. 성공은 결국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의 초점은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바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 나 자신에게 있다. 나 자신의 성장에 있다. 성장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다. 성장은 자신이 더 커지는 것이다. 예전보다 더 커다란 내가 되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여야 한다.
우연히 맛객 김용철님이 출연한 인간극장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 먹을거라면 환장하는 나인지라 맛객이라는 타이틀에 마음을 뺐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또 천직찾기 코치로서 특이한 직업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무지하게 관심이 많은 나 아닌가? 알고보니 맛객님은 꽤나 유명한 블로거였다. 그 분이 진행하시는 미식쇼라는 것에도 관심이 생겨, 블로그의 글도 몇 편 읽어봤다. (글을 읽다보니, 예전에 검색해서 몇 번 글을 본 것 같기도..)
참으로 멋진 인생을 사시는 분 갔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의 냄새, 그 냄새를 물씬 풍기는 분이었다. 냄새라고 하면 좀 이상한가? 그럼 향기로...
사진 한 장, 글 한 편 모두에 그의 향기가 은은하게 베어있었다. 이런 사람의 삶을 보는 것은 내게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만 많은 현대인들에게 삶의 방향을 가장 명확하게 제시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분들이 아닐까싶다. 백마디 말보다 그저 자신의 삶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분들 말이다.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이것들은 미래에 있다. 우리는 아직 성공하지 않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현재로부터 출발해 저 먼 미래에 위치해 있는 "성공"과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 생전에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이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방법이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취한다. 서점에는 눈과 손을 잡아끄는 현란한 문구로 치장한 책들이 우릴 유혹하고, 별 영양가 없는 몇 만원짜리 강의부터 수 백만원에 달하는 자기개발 프로그램까지 수많은 노하우들이 난무한다. 매번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크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우리는 다시 그것들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는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영양가 없었음을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인정해야 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랴. 탓할 사람은 없다. 오로지 내가 못난 탓이 아니던가? 의지력이 약하고, 끈기가 없는 나의 탓일 뿐이다. 그래도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지는 않은데, 매번 제 자리 걸음인 것 같아 마음이 한 없이 답답하다.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성공과 행복을 대하는 태도이다.
갖가지 자기계발, 성공론, 행복론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수많은 이들이 성공과 행복의 전문가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앞다투어 관련 상품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적어도 나(여러분 자신)에게만큼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처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한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이 강하고, 끈기가 있는, 즉 뼈빠지게 노력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자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같이 의지박약의 인물에게는 그림의 떡 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친절하게도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안내해주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 길을 걸어갈 힘이 없다. 그것이 문제이다. 방법은 많으나 정작 나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나에게도 통하는 다른 방법이 한 가지는 있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에 의지해 또 다른 것을 찾아 오늘도 해메이는 것뿐이다. 그러한 방법이 정말 있을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 그것을 찾아내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미천한 견해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성공과 행복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철저하게 다시 파해쳐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그 목적지에 '성공' 또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원하는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의지나 끈기,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연료인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연료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성공론, 행복론, 자기개발론은 이러한 연료가 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그 연료를 아낌없이 불사르라고 외치는 다소 기괴한 모습의 이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몸이 쇠약해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열심히 운동하라고 외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연료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이 지금 많은 사람이 풀고 싶은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기본 전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진짜 문제는 행복과 성공을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로 설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100억의 돈을 버는 것은 먼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100억이 곧 성공이며, 행복이라는 '100억=행복=성공'의 공식은 틀린 것이다. 아파트를 사는 것은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행복=성공'의 공식을 잘못된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 인기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은 도달해야 될 목적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기와 명예=행복=성공'의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료, 즉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지금껏 의지, 노력, 끈기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게 그러한 연료가 없어 보인다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 난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껴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와 끈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던 그 밑의 근본적인 에너지, 그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뼈를 깎는 고통을 오로지 의지력에 의해 견디어 낸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힘들다. 혹은 그렇게 도달한다 한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꿈에 그리는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도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연비가 높은 연료이다. 우리가 노력이라고, 의지력이라고, 끈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에너지에 대해 붙은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고,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껴야 노력도 할 수 있는 것이며, 의지력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오로지 행복을 목적으로만 설정함으로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리 재미없는 것, 혹은 더 나아가 매우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로지 자신의 하찮은 의지력으로 모든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의 승률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력한 의지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라.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경우만 돌아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즐기는 자를 따를 자는 없다는 공자의 말이 어떤 의미일지 다시 한 번 새겨보기 바란다. 이것은 자기계발의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그렇지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원리이다.
우리의 삶은 각자 저마다의 유일한 컨텐츠이다. 그것은 나의 드라마이고, 나의 영화이며, 내가 밥법이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밑천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인다. 나 역시 그동안 눈을 번뜩이며 멋진 비지니스 아이템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최고의 아이템은 항상 나의 삶 속에, 그리고 내 깊은 곳에 있었음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그동안의 나의 컨텐츠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차별화된 아이템, 가장 큰 돈을 벌어다 줄 아이템을 가져다 준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내가 어디에 나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야 하는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 순간 자연스럽게 날 찾아온다.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하찮은 의심이 들어, 그것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때 봤던 그것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며, 이리저리 잔머리만 굴리다 결국 쪽박차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만든다.
내용이 뻔한 영화, 그저 그런 내용의 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독설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어디선가 봤던 내용에 예측할 수 있는 결말로 달려가는 스토리는 재미없다.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끌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의 삶, 나의 드라마는 어떠한가?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 나는 나의 삶을 어떠한 컨텐츠로 가득 채울 것인가? 날마다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감정, 똑같은 행동(물론 그리 즐겁지 않은)들로 가득찬 삶, 재미없지 않은가? 그 삶의 주인공이 재미없다면, 그것을 보는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의 삶을 매력적인 드라마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가 해야할 일이다.
개개인에게서 정신 이상은 드물게 나타난다. 하지만 단체, 정당, 국가, 시대에서 그것은 규칙이다. - 니체
우리 사회의 현재 상태에서 환자는 옳고 여러분은 틀렸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 H.S.설리번
아이가 15세가 될 즈음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존재를 얻게 된다. 미친 세계에 적응한 반 정도 미친 인간 말이다. 이것은 우리 현 시대에서 정상상태이다. - R.D 랭
현실? 이상한 현실이군. 무엇인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군 - 에르빈 슈뢰딩거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굳이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크게 벗어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쳤다'라고 표현합니다. 저도 꽤나 많은 들어본 소리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그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때는 철밥통으로 불리는 직장을 때려치고, 이름도 생소한 코치가 되겠다고 했을 때였지요. 그 여파는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두려워 미친 짓은 웬만하면 삼가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삼가한다기 보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진짜 '미친 짓'이라면 되도록 삼가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수많은 자기모순적 규칙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 저렇게 해도 문제가 되는 이상한 규칙들 말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지만, 점점 행복과는 멀어지는 사람들.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애쓰지만, 점점 가족들과는 멀어지는 사람들. 이 세상은 온통 문제로만 가득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이들 모두 이런 규칙들이 만들어낸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들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규칙이 나의 생각과 행동, 결국 나의 삶을 결정합니다. 이런 문제 속에서 영원히 탈출하는 방법은 자신 스스로 철처하게 지켜왔던 그 규칙을 벗어 던지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미쳐야'만 할 수 있는 짓입니다.
약 1년 전 천직찾기 코칭을 진행하던 중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고객으로부터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가끔씩 연봉 7천을 던져버린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그 대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생토록 미쳤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하는 것처럼 따분한 인생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미쳐봅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어느 쪽이 미친 것인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그런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