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Anthropologist)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의 틀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문화인류학 분야의 명저이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1944년 미국 국무성의 위촉으로 연구를 시작한 저자가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 일본 문화를 연구하여 세계적인 명저를 내놓았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은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더 엄밀하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부분적인 체험은 전체를 보기보다는 오히려 전체적인 관찰을 방해하기 쉬운 것이다.
또한 일본에 관해 일본인이 연구하거나, 한국에 관해 한국인이 연구하는 것은 자칫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채 넘기기가 쉽기도 하다. 마치 우리가 항상 호흡하는데 사용하는 공기의 존재를 늘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안경의 경우 안경을 쓴 당사자가 렌즈의 처방을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국민이 자기의 세계관을 분석하는 데 기대를 걸 수가 없다....(중략)...우리는 사회과학자의 직업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현대 세계의 여러 나라 국민에 관해 이 안과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니 루스 베네딕트가 책을 쓰기 위해 일본을 연구한 방식이나, 문화인류학에 대한 그녀의 정의가 코칭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코치는 고객의 과거나 사생활을 깊이 탐구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고객의 모든 체험을 다시 경험해보려는 것처럼 과거사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현재의 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라이프 코칭의 경우 고객의 전반적인 삶의 영역을 두로 다루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지만, 이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코치가 고객의 마음속에 들어가 고객의 모든 것을 느끼고 체험하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고객이 스스로 코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방문한 적 없이 철저하게 일본 밖에서 일본을 연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녀 역시 책을 통해 일본의 모습을 마치 거울과 같이 비춰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문화인류학자를 안과의사로 비유한 것은 코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코칭의 기본 전제는 고객이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찾아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안경을 쓰고는 있지만, 자신이 쓰고 있는 렌즈의 처방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라는 상호책임의 파트너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처방은 코칭의 과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코칭에서는 처방하지 않는다. 코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고객이 탁월한 셀프코치가 되는 것이다. 코치가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훌륭한 코치가 되기를 바란다. 즉, 코칭고객은 안경을 쓴 안과의사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문화인류학은 연구하는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어떠한 독립된 행동도 서로 체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코칭은 주로 판단없는 경청과 강력한 질문을 통해 진행된다. 특히 코칭에서 경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뿐더러, 경청은 모든 다른 기술들의 전제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깊은 경청 중에 코치는 고객의 말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것들을 듣게 된다. 말하는 순간의 감정이나 표정, 제스처, 가능하다면 에너지의 흐름까지 모든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경청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순간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고 고객을 드러낸다. 단지 코칭세션 중의 경청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코칭과정 중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되는 모든 정보는 그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고객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코칭을 결국 통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코칭 초기에 고객이 밝힌 코칭이슈는 물론이며, 고객의 삶의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것이 어느 하나만으로 그 만족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칭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문화인류학은 개인이 모여 이룬 조직,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이다. 개인과 공동체, 그 대상은 다르지만 근본은 역시 인간이다. 그런 면에서 코칭과 문화인류학이 많은 공통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코칭과의 연관성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책 속에서 코칭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인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좋은 소스를 찾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