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부분은 시간나는대로 편집해 올리렵니다.
어제 있었던 CCC훈련 중 '코칭의 구조'에 대한 강의 중 앞부분 입니다~
훈련 중이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싶어 올려둡니다.
티모시 골웨이 Timothy Gallway
(Gallway의 발음을 찾아보니, '골'과 '걸'의 중간 정도 되는 듯하다)
티모시 골웨이는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 나이로는 74세이다. 아마도 최고령 코치가 아닐까 싶다. 그가 현대 코칭분야에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세계적인 사상가나 학자로 인정을 받는 정도는 아닌지라, 유명해지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저서의 프로필과 위키피디아, 이너게임 법인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이 전부인 듯하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어릴 적부터 테니스를 했다는 것('전미 주니어 챔피언쉽'까지 출전했다고)과 첫 책을 집필하기 전에 명상에 심취했었다는 정도이다.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마하라지
마하라지에 대한 헌사
명상 외에도 그는 태생적으로 이너게임을 발전시킬 수 밖에 없는 기질을 타고 난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국내에 번역된 <이너게임 The Inner Game of Work>에는 하버드 재학 시절 행동주의 심리학의 대표 학자인 스키너의 수업을 듣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일화가 소개된다. 그러한 방황을 통해 그가 깨닫게 된 것은 결국 "인간은 무리와 함께 살아가지만, 무리와 같은 삶을 살 필요는 없다"라는 속담의 참된 의미였다. 이 역시 이너게임은 물론이고, 코칭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핵심 철학 중 일부이다.
대학시절 그를 충격으로 빠뜨렸던 스키너 상자
하버드를 다녔지만, 다소 엉뚱한 학생이었는지 그는 '돈키호테'에 비유되기도 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하버드에서 테니스부 주장을 맡았다. 이후 교직생활을 하던 중 안식년을 맞아 테니스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너게임'의 초기 버젼(?)을 발견하게 된다. 통제와 지도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코칭에서 판단하지 않는 관찰(혹은 인지)이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낸다는 파격적인 발상을 한 것이다. 이것은 학창시절 그를 충격속에 빠뜨렸던 스키너의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출세작
이런 그의 발견은 그의 처녀작 <The Inner Game of Tennis>의 출간으로 이어진다. 책은 큰 성공을 이룬다. 미국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는데, (국내 번역본의 표지에는 미국에서 7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써있다), 정확히 그것이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지니는 것인지는 짐작하기가 힘들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현대적 코칭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 가치가 크다. 책이 테니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사실 그 충격파는 오히려 스포츠계에서 더 컸을 거라 예상되는데 스포츠계에서 바라보는 그의 업적이나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후 그는 <Inner Skiing>(1977), <The Inner Game of Golf>(1981), <Inner Game of Winning>(1985) , <The Inner Game of Music>(1986) 등을 발표하며 승승장구 한다. 1990년 대에는 발표된 저작이 없는 것으로 봐서, 열심히 현장에서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고 발전시켜 나갔던 것 같다. AT&T, Apple, Coca-Cola, IBM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비영리 기관을 대상으로 학습, 코칭, 성과관리에 관한 컨설팅, 코칭을 수행한다. 그의 이론은 스포츠를 넘어 교육, 예술, 기업경영, 의료, 건강 등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간다. 그의 연구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립된 컨설팅 회사가 열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너게임사 홈페이지
드디어 2000년이 되어, 스포츠와 예술 분야에서 쌓았던 노하우를 집대성하여, 비지니스에 적용한 <The Inner Game of Work>를 출간한다.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그의 저서이다. 이후 저작도 없고, 그의 나이도 있어 그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2009년 <The Inner Game of Stress>를 발표한다. 이로써, 스포츠, 예술, 비지니스 코칭에 이어, 라이프 코칭 영역을 직접적으로 다룬 새로운 이너게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70세가 넘어서도 저작을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주요출처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Timothy_Gallwey
이너게임사: http://www.theinnergame.com
아마존: http://amzn.to/ooeH9p
*자료가 많지 않아, 몇몇 넘겨짚은 부분이 있긴 하나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 정확한 내용을 알고 계신 분이 보시고 지적해주신다면 그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내용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는 대로 업데이트할 것입니다.
지난 일요일 네이버 모닝페이지카페 운영자이신 로이스님의 사무실에 놀러갔다. 클레이 카드를 무려 10세트나 주문하신 터라 가는김에 직접 배달을 했다. 자연스럽게 카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로이스님께서 가지고 있던 다른 (코칭에 활용할 수 있는)카드를 보여주셨다. 내가 모르던 것들이었다. 내가 몰랐던 카드도 꽤 많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되고, 그러고 보니 코칭에 활용할 있는 도구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코칭에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몇 가지 카드를 소개해 본다.
1. Secrets of the Millionaire Mind Cards
<백만장자 시크릿>의 저자 하브 에커(Harv Eker)가 만든 카드이다. 책에 포함된 내용 중 핵심메세지를 뽑아 카드로 만든 것. 돈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코칭이라면 활용할 만한 가치가 높다. 아이폰앱으로도 출시되어 있다. 카드는 영문 버전이며 총 50장.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 가능. 물론 아마존에서 사도 됨. 가격은 $15.95
2. Everyday creative Cards
창조성 코치로 활동 중인 에릭 메이슬(Eric maisel)이 만든 카드. 에릭 메이슬의 책은 국내 몇 권 번역이 되어 있다. 창조성 개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현재 나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로이스님의 카드를 찍어왔다. 특히나 칼라와 디자인, 남다른 케이스가 멋지다. 같은 시리즈로 Everyday Smart라는 카드도 있다. 좀 전에 yes24에서 두 가지 모두 주문했다. 역시 영문버젼이며, 세어보진 않았지만 30 Ways to Wake Up Your Inner Artist 라는 부제가 붙은 것으로 봐서 카드는 30장인 듯하다.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가능. 아마존에서 보니 kindle버전으로도 나와 있음. 가격은 $11.99. 역시 아이폰앱으로 출시되어 있다.
3. 버츄카드(Virtue Cards)
코칭카드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버츄카드. 한국버츄프로젝트를 통해 보급/판매되고 있다. 52가지의 미덕을 담은 52장의 카드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이 3만원으로 내가 아는 것들중에서는 가장 비싸다. 반면 디자인은 좀 old하다.
4. 가치성장카드 (Values Mastery Cards)
역시 로이스님 사무실에서 찍어온 사진.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버츄카드와 구성이나 형식은 비슷해 보인다. 사단법인 세계평화마중물 이란 곳에서 만들었다. 홈페이지 안내를 보니 카드는 55장이며, 가격은 안내되어 있지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문의 후 구입할 수 있다.
5. 클레이 (Question & Play)
"당신은 이제 프로코치입니다.
프로코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 배웠으니, 이제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기만 하면 고수가 될 것입니다.
자, 축하합니다."
우리는 모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박수를 치며, 서로를 축하했다.
내가 처음으로 참가했던 코치훈련프로그램을 마치던 날의 장면이다. 단어 몇 개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 말을 분명히 기억한다. "우리는 이제 프로코치다". 그 때는 모두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 이제 열심히 코칭경험을 쌓기만 하면, 훌륭한 프로코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 사회에 큰 기여를 하게 될 터이다." 말은 안했지만,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푼 꿈이 깨지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와 함께 공부했던 다른 수료생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해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코칭을 할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치훈련과정을 마쳤건만, 코칭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코칭을 제대로 해본 경험도 없었다. 그러니, 경험을 쌓고 싶어도 쌓을 수 없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아마도 초보코치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다. 코칭을 하기 위해, 코칭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해도 그것마저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코칭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훈련을 마친 수료생인 나의 머리 속에 코칭에 대해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코칭이 아주 아주 좋은 것이라는 것, 그것 외에는 없는 듯 했다. 훈련기간 내내 들은 말이기 때문에.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 한 권이 있다. 레베카 코스타의 <지금, 경계선에서>.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이라는 부제 걸맞게, 저자 우리 안에 뿌리깊게 잠자고 있는 오래된 믿음들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그것도 아주 큰 놈으로다가.
초창기 문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문명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특정 사건(들)이 일어나기 이전에 두 가지의 경고 징후가 나타난다고 한다. 첫번째 징후는 정체 상태다.....상황이 더욱 절망적으로 악화되면 두 번째 징후가 나타난다. 즉,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현상'이다.
마야 문명과 같은 고대문명이 크게 부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자취도 없이 몰락해버린 이유를 이와 같은 두 단계로 설명한다. 정체 상태는 언제 일어나는가? 바로 우리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어난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지금 이 시대의 문제들 대부분이 그렇다. 쉽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다. 관련된 요소가 너무나 많고, 그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그 어떤 문제도 쉽게 풀기가 어렵다. 최근 일본의 대지진과 그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태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우리는 그저 넋을 놓아버리기 쉽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 커져만 가는 정체상태를 겪게 된다.
그 다음은 바로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단계'이다. 정체상태가 계속되면, 사람들의 이성은 마비되고 선택의 결정권은 혼돈 속의 두려움에게 넘어가 버린다. 즉, 사실을 믿기보다는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어떠한 경우인지 책 속의 예를 한 번 보자.
역류에 말려들었을 때 우리는 단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기슭을 향해 더 열심히 헤엄치면 물살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는 경험적 증거가 있음에도 우리는 좀처럼 '믿음'을 버맂 않고 곧장 육지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수영을 계속한다. 몸은 점점 지치고 그에 따라 두려움이 고개를 들지만 어떤 데이터, 정보, 사실로도 우리의 믿음을 꺾지는 못한다.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이 정도면 굳이 고대 문명의 몰락과 같은 거대한 주제를 끌어내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렇게 사느라 정작 내가 바라는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는 일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인생 얘기는 접어두고 코치들(혹은 자기계발/리더십/동기부여 분야의 종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훈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초보코치는 당황스러웠다. 실력이 없으니 코칭을 잘 할 수도 없고, 코칭을 할 수 없으니 실력을 키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코칭을 가르쳐준 곳에서는 이제 알 건 다 알았으니, 경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는데 정작 내가 뭘 아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혹시,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그 다음에 더 비싼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기는 했다). 사실 코치가 되어서 이러한 상황을 초기에만 겪은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아 뭔가 좀 알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정체기가 찾아왔다. 코칭이 무엇인지 조금 말할 수 있겠다 싶으면, 다시 내가 아직도 아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러한 과정의 반복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한 계단을 더 올라섰다 싶으면, 아니나 다를까 또 모든 것이 안개 속에 갇히는 정체기를 겪었다. 이러한 과정을 벌써 얼마나 겪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정체기는 때로는 며칠, 때로는 몇달에 걸쳐 지속되었다. 아마도 많은 코치들이 코치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험, 주변 코치들과의 솔직한 대화, 그리고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에 비추어 봤을 때 대체로 그러한 듯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다. 레베카 코스타의 표현으로 빌리자면, 오래된 믿음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것이 코칭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업으로 삼은 코치들조차도, 코치로서의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맞이하게 되는 정체의 과정에서는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어버리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룬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혹은 '사실적'이라고 부를 만한 데이터, 혹은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기 힘들다. 또한 현대 코칭의 역사가 길지 않고, 아직 학문적으로서 자리잡지 못한 터라 뭔가 표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이사람 저사람 저마다 이런저런 이론, 방법론을 주장하고 수많은 프로그램을 쏟아내며 오로지 자신의 것이 '세계최고'이며, 코칭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
대중은 둘째치고, 코치들도 이러한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져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저 이것이 좋다면, 이것에 몰리고, 저것이 좋다면 저것에 몰려든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어느 순간 그들은 모든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그저 어떤 프로그램, 누군가의 이론에 자신의 모든 믿음을 던져버린다. 무엇은 어떠한 장단점이 있고, 어떠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진지하게 탐구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이 보기에 최고라고 여기는 것, 혹은 최고의 고수라고 여겨지는 사람에 모든 것을 올인한다. 그의 이론, 그의 프로그램의 전도사가 된다. 그것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때에 따라서는 정작 그것을 만든 사람의 열정을 넘어서는 듯 보일 때도 있다.
이런 길을 택하는 것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최고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에게 더 이상의 '진짜' 공부는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부를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공부가 되기 싶다. 자신이 믿는 것과 배치되는 것에는 불편함을 느낀다. 이미 알만큼 안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에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진정한 탐구를 위한 공부가 되지 못한다. 인간의 변화와 성장, 코치가 다루어야 할, 그리고 공부해야 할 주제이다. 이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이다. 그것을 단지 하나의 프로그램, 한 권의 책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알려졌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발견이 있을까?
얘기가 길어졌다.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코치, 그외 인간의 변화와 성장을 다루는 모든 이들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정말 자신은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말이다. 학교를 떠난 이후로, 오로지 실전 경험만을 내세우며 공부를 놓아버린 의사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진료를 받고 싶지 않다.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지 않는 것은 직업적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제 정말 뭔가 알겠다 싶을 때, 그 때가 정말 조심해야 할 때이다. 자신이 변화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느니, 누군가를 몇 일만에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욱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코치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을 때, 몰락하는 것은 단지 자신 뿐이 아니다. 나를 믿고 찾아온 고객의 발목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이다. 고객에게 코칭비까지 받고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처음 코칭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다. 훈련 중에는 교육생들끼리 짝을 이뤄 상호코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15~2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눈 후에, 서로 코치와 고객의 입장에서 느낀점을 짧게 나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피드백이 대부분 비슷했다. 머리 속이 복잡했는데, 생각이 좀 정리되는 느낌이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나 역시도 대부분 그런 피드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내게 그 말의 뜻은 "코칭대화를 나누기 전보다는 좋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인상깊은 대화는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 것인가 싶어 주변에 여러 사람에게 그러한 피드백의 진짜 의미를 물어봤다. 대답은 거의다 비슷했다. 정말 단순히 생각이 정리되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좀더 리얼한 표현으로 바꿔쓰자면 "안하는 것보단 낫지만,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나눌 정도의 대화는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훈련을 받는 초보코치들의 코칭대화였고, 그 시간도 매우 짧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실제 코칭현장에서도 꽤 많이 일어난다. 좋긴 하지만, 그리 강렬하지는 않은 정도의 코칭대화.
코칭은 주로 코치와 고객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코칭대화가 단순히 코치와 고객이 나누는 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코치라 하더라도 코칭대화를 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거꾸로 코치가 아니라 하더라도 코칭대화를 할 수도 있다. 코칭대화는 일반적인 대화와는 다른 나름의 색깔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냥 코치와 고객이 나누는 대화라 하지 않고, 코칭대화라 하는 것이다.
코칭대화는 분명한 목적을 갖는다. 그 주제가 무엇이 되었건, 근본적으로는 고객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나름의 구조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 대화는 코칭이 갖는 구조 안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 축구 경기는 축구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코칭대화는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띠게 되는데, IAC 15 proficiencies 문서에서는 코칭대화의 특징을 provocative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또한, 이 단어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대비되는 단어로 evocative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provocative의 사전적 의미는 '도발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다. 반면 evocative는 '주의를 환기하는,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의 의미를 지닌다. 느낌이 어느정도 전달될 것이다. 코칭대화가 도발적이라고 해서, 고객을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고객이 말하는 것에 사사껀껀 딴지를 거는 대화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코칭대화는 그저 주의를 환기하는 정도의 밋밋한 대화와 고객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대화 사이에서 그 선을 적절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코칭대화는 즐겁고, 흥미로워야 한다. 여기서 즐겁다는 말은 단순히 재미있는(interesting) 의미와는 다르다. 재미를 넘어 몰입할 수 있고,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예상 밖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몰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코칭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5분이 되었건, 1시간 혹은 2시간이 되었건, 그 시간 중에 적어도 한 번은 눈이 반짝이거나,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코칭대화의 묘미이자 조건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provocative와 함께, '도전적인, 반전이 있는' 이런 수식어를 덧붙이고 싶다. '유즈얼 서스팩트'나 '식스 센스'와 같은 기막힌 반전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그런 대화였으면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과학자의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 혹은 탐정의 태도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끊임없이 확인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끝까지 파해쳐보려고 하는 그러한 태도 말이다. 코칭대화에서 서로의 몰입도가 떨어질 때가 있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이 잘 흘러갔지만, 뒤돌아보면 남는게 별로 없을 때도 있다. 이유야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맥락을 이어가자면, 그것은 코치가 위의 태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코칭대화 내내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고객이 들려주는 수많은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들을 흘려버릴 수 밖에 없다. 지루해지는 혹은 밋밋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단 번에 뒤집을 수 있는 힌트들은 계속 주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텍스트만 서로 주고 받는 생명력없는 대화이다. 코칭대화는 시간이 정해져있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저 언젠가 그러한 반전의 순간이 오겠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기다리기만 하면 아마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코치가 그 순간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순간은 시간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순차적이고 선형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 각본없이 찾아오는 비선형적인 찰나이다. 축구선수에게 골 결정력이 필요하듯, 코치에게는 그러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결정력이 필요하다.
금요일이다. 얼마 전부터 금요일은 <위대한 탄생>을 보는 날이 되었다. 걸그룹 멤버들의 이름도 못 외우는 나이지만, 어느새 <위대한 탄생> 참가자들의 이름을 다 외우는 상황이 되었다. 매주 탈락자가 결정되는 서바이벌 형식이 스릴과 재미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더욱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매주 조금씩 성장하는 출연자들의 모습니다. 발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각자 한 편의 멋진 자기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매주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얼마나 성장을 하는지. 또 성장한 그들의 모습을 멘토와 시청자들은 어떻게 보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맛이 아주 쏠쏠하다.
처음 그들의 오디션은 재능의 경연장이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음색과 스타일을 가졌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음악적 재능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아쉽지만 다음 단계 진출을 접어야만 했다. 물론, 인간사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예외와 변수는 있었다. 재능이 덜해 보이는 이가 선택되기도 하고, 탁월한 재능을 가져보임에도 불구하고 고배를 마치는 이도 있었다. (물론 아마추어의 시각이니 그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다) 10, 20년이 넘는 음악 인생을 살아온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내공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눈으로 재능을 가진 이들을 고르고 또 골라냈다.
재능과 재능의 대결,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탁월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그들 대부분이 늘 우리 곁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지닌 재능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들이며, 그것을 빛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의 삶이 그토록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첫번째 요소, 재능의 결핍이 아닐까? 물론, 결핍이라는 표현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가진 재능을 찾지 못하고, 결핍된 것처럼 묻혀두고 산다는 말이다.
Top 12가 가려지고 생방송 체제로 바뀌면서, 이제 그들의 대결 양상은 조금 달라진 듯하다. 지금도 참가자들간에 재능과 기본기에 대한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타고난 재능을 넘어 다른 요소가 그들의 당락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순위를 결정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난는 것을 진정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단지 누가 더 가수가 되길 간절히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에 서는 그 순간 모든 것과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 그 능력(?)이다. 이것을 능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위대한 능력이다. 진정성, 그것은 무대에서 완벽한 몰입을 만들어내며, 무대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고, 노래를 듣는 멘토, 관객, 시청자들과 보이지 않는 소통의 채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단순히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넘어서는 감동을 전달해준다. 이제 그들의 경쟁은 노래를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를 넘어, 감동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변했다.
우리도 누구나 인생의 드라마를 꿈꾼다. 드라마의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성장과 그를 통한 성공, 기적을 이루어내는 드라마는 바로 재능을 그 시작으로 한다. 그들의 무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 그들이 빠른 성장을 이루어내며 더 나아지는 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른다고 알고 있다. 자신은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재능 기반의 인생을 만들어나가지 못한다. 재능을 기반으로 하지 못해, 소위 싹수가 보이지 않으니 과감히 무언가에 자신의 인생을 던질 수도 없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만, 내 인생의 드라마는 시시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위대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묻혀 있는 재능을 찾아 그것을 갈고 닦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성공의 공식 "피나는 노력(?)", 그것도 재능을 기반으로 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재능을 찾아 그것에 내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그것이 탁월함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만들어 낸다. 다른 이를 감동시킬 수 없다면, 나 역시 감동할 수 없다. 내가 감동할 수 없다면 다른 이도 감동시킬 수 없다. 감동이 없는 인생은 심심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는 누구에게나 있다. <위대한 탄생>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나의 위대함을 깨워 그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를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떤가? 저 위의 이미지, <위대한 탄생> 타이틀 밑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손이 보이는가? 당신만의 <위대한 탄생>, 그것을 기대해 본다...
오늘은 또 어떤 결과가 나올까? 흠흠흠..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이것들은 미래에 있다. 우리는 아직 성공하지 않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현재로부터 출발해 저 먼 미래에 위치해 있는 "성공"과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 생전에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이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방법이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취한다. 서점에는 눈과 손을 잡아끄는 현란한 문구로 치장한 책들이 우릴 유혹하고, 별 영양가 없는 몇 만원짜리 강의부터 수 백만원에 달하는 자기개발 프로그램까지 수많은 노하우들이 난무한다. 매번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크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우리는 다시 그것들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는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영양가 없었음을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인정해야 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랴. 탓할 사람은 없다. 오로지 내가 못난 탓이 아니던가? 의지력이 약하고, 끈기가 없는 나의 탓일 뿐이다. 그래도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지는 않은데, 매번 제 자리 걸음인 것 같아 마음이 한 없이 답답하다.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성공과 행복을 대하는 태도이다.
갖가지 자기계발, 성공론, 행복론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수많은 이들이 성공과 행복의 전문가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앞다투어 관련 상품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적어도 나(여러분 자신)에게만큼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처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한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이 강하고, 끈기가 있는, 즉 뼈빠지게 노력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자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같이 의지박약의 인물에게는 그림의 떡 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친절하게도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안내해주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 길을 걸어갈 힘이 없다. 그것이 문제이다. 방법은 많으나 정작 나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나에게도 통하는 다른 방법이 한 가지는 있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에 의지해 또 다른 것을 찾아 오늘도 해메이는 것뿐이다. 그러한 방법이 정말 있을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 그것을 찾아내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미천한 견해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성공과 행복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철저하게 다시 파해쳐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그 목적지에 '성공' 또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원하는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의지나 끈기,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연료인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연료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성공론, 행복론, 자기개발론은 이러한 연료가 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그 연료를 아낌없이 불사르라고 외치는 다소 기괴한 모습의 이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몸이 쇠약해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열심히 운동하라고 외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연료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이 지금 많은 사람이 풀고 싶은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기본 전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진짜 문제는 행복과 성공을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로 설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100억의 돈을 버는 것은 먼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100억이 곧 성공이며, 행복이라는 '100억=행복=성공'의 공식은 틀린 것이다. 아파트를 사는 것은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행복=성공'의 공식을 잘못된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 인기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은 도달해야 될 목적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기와 명예=행복=성공'의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료, 즉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지금껏 의지, 노력, 끈기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게 그러한 연료가 없어 보인다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 난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껴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와 끈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던 그 밑의 근본적인 에너지, 그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뼈를 깎는 고통을 오로지 의지력에 의해 견디어 낸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힘들다. 혹은 그렇게 도달한다 한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꿈에 그리는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도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연비가 높은 연료이다. 우리가 노력이라고, 의지력이라고, 끈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에너지에 대해 붙은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고,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껴야 노력도 할 수 있는 것이며, 의지력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오로지 행복을 목적으로만 설정함으로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리 재미없는 것, 혹은 더 나아가 매우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로지 자신의 하찮은 의지력으로 모든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의 승률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력한 의지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라.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경우만 돌아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즐기는 자를 따를 자는 없다는 공자의 말이 어떤 의미일지 다시 한 번 새겨보기 바란다. 이것은 자기계발의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그렇지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원리이다.
최근에 천직찾기 코칭을 마친 고객분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기꺼이 공개를 허락해주신 최용혁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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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3주째를 지난 시점에서 코칭후기를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내 존재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거울과 같았다. 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거울 말이다.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그동안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나의 동기를 들었던 것이였다. 난 사회의 일반적인 정보로 인하여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남과 비교하는 의식을 가지고 쫓기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아무리 내게 유익한 교육과 행동 이여도 마음의 동기가 두려움에 기하였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나를 힘들게 했고 불안케 했다. 하지만 내 내면의 동기를 알아버리는 순간 마치 알에서 깨어 나오듯이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 내면의 동기가 평안과 신뢰감으로 변하자 행동은 그대로 이지만 고요함을 누릴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 그것은 가능성의 세계로의 초대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의 지식과 패러다임속에 갇혀 살았는지 깨달았다. 다른 세계를 원했지만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기존의 것을 추구했던 아이러니한 상황을 살았었다. 지금은 새로운 것에 도전 중이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다림과 행동을 하는 시기이다. 코치를 통해 깊은 숨을 쉬며,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시간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고 풍성한 시간이다.
*7주차
지금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러한 청춘을 살고 있다. 때로는 아프고 새파랗게 서글프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러한 청춘 말이다. 그러한 시기, 나의 참 소중한 시기에 최코치님과의 코칭은 함께하는 동반자요 나를 일으켜주는 친구이자 나답게 하는 자극제이다. 이 자극은 나를 참 경이롭게 한다. 그 동안 내가 믿어 왔던 벽들과 제한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도왔으며, 이미 정해진 판이라 생각했던 나의 인생을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를 이끌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다. 코치와의 대화 가운데 내 속에서 하는 말은 "아 그렇지"이다. 나와 세상 그리고 직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결국엔 가장 나답게 살도록 하는 과정 이였다. 이 과정을 통해 밤마다 잠을 못 이루는 나를 발견한다. 나다움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내 가슴을 울리며 가능성으로 인해 내일을 기다리며 잠을 못 이루게 한다. 아이디어들과 새로운 대안, 창의적인 방법들이 떠오른다.
또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러한 삶 가운데 나답게 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했으며 그러한 모든 것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 과정 중이다. 7주간의 과정은 순간 순간 마다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이로움 이였다.
*최종
지금 나는 마치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 위에 있는 것 같다. 청명한 하늘이 있고 시야가 탁 트인 그 곳 말이다. 내 앞을 가로 막았던 빌딩과도 같은 거대한 장애물들이, 내 시야를 가렸던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내겐 어디든 가볼 수 있는 가능성과 자유가 남게 되었다. 껍데기는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 인지하는 순간, 나다움의 길의 이정표가 생겨나기 시작 하였다. 나를 설레게 하며, 잘할 수 있고, 의미가 있는 그것 말이다.
코치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내 예측을 벗어나는 시간 이였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시간 이였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최코치님과의 코칭이든, 내 삶이든 무엇을 예상하던 그 이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알아볼 순 없지만(^^), 코칭시간에 함께 나눴던 내용
우리의 삶은 각자 저마다의 유일한 컨텐츠이다. 그것은 나의 드라마이고, 나의 영화이며, 내가 밥법이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밑천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인다. 나 역시 그동안 눈을 번뜩이며 멋진 비지니스 아이템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최고의 아이템은 항상 나의 삶 속에, 그리고 내 깊은 곳에 있었음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그동안의 나의 컨텐츠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차별화된 아이템, 가장 큰 돈을 벌어다 줄 아이템을 가져다 준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내가 어디에 나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야 하는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 순간 자연스럽게 날 찾아온다.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하찮은 의심이 들어, 그것을 외면하기도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때 봤던 그것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며, 이리저리 잔머리만 굴리다 결국 쪽박차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만든다.
내용이 뻔한 영화, 그저 그런 내용의 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독설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어디선가 봤던 내용에 예측할 수 있는 결말로 달려가는 스토리는 재미없다.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끌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의 삶, 나의 드라마는 어떠한가?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 나는 나의 삶을 어떠한 컨텐츠로 가득 채울 것인가? 날마다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감정, 똑같은 행동(물론 그리 즐겁지 않은)들로 가득찬 삶, 재미없지 않은가? 그 삶의 주인공이 재미없다면, 그것을 보는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의 삶을 매력적인 드라마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가 해야할 일이다.
개개인에게서 정신 이상은 드물게 나타난다. 하지만 단체, 정당, 국가, 시대에서 그것은 규칙이다. - 니체
우리 사회의 현재 상태에서 환자는 옳고 여러분은 틀렸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 H.S.설리번
아이가 15세가 될 즈음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존재를 얻게 된다. 미친 세계에 적응한 반 정도 미친 인간 말이다. 이것은 우리 현 시대에서 정상상태이다. - R.D 랭
현실? 이상한 현실이군. 무엇인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군 - 에르빈 슈뢰딩거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굳이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크게 벗어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쳤다'라고 표현합니다. 저도 꽤나 많은 들어본 소리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그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때는 철밥통으로 불리는 직장을 때려치고, 이름도 생소한 코치가 되겠다고 했을 때였지요. 그 여파는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두려워 미친 짓은 웬만하면 삼가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삼가한다기 보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진짜 '미친 짓'이라면 되도록 삼가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수많은 자기모순적 규칙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 저렇게 해도 문제가 되는 이상한 규칙들 말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지만, 점점 행복과는 멀어지는 사람들.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애쓰지만, 점점 가족들과는 멀어지는 사람들. 이 세상은 온통 문제로만 가득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이들 모두 이런 규칙들이 만들어낸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들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규칙이 나의 생각과 행동, 결국 나의 삶을 결정합니다. 이런 문제 속에서 영원히 탈출하는 방법은 자신 스스로 철처하게 지켜왔던 그 규칙을 벗어 던지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미쳐야'만 할 수 있는 짓입니다.
약 1년 전 천직찾기 코칭을 진행하던 중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고객으로부터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가끔씩 연봉 7천을 던져버린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그 대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생토록 미쳤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하는 것처럼 따분한 인생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미쳐봅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어느 쪽이 미친 것인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그런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