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 시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극단적 긍정주의를 비판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것이 전부이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건강, 부, 행복을 모두 거머쥘 것이다."라는 외침에 그녀는 반기를 든다. 그녀의 비판 대상은 자기계발 강사, 라이프 코치 등 동기부여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코치라는 직업을 동기부여 전문가로 보지 않는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사실 이들은 일종의 지적 사기꾼들이다. 그러니,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기 위해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 될 듯 싶다. 필독서는 아니더라도 권장도서라고는 할 만하다. 물론 나도 정독으로 끝까지 읽어봤다.

그녀의 말대로 그야말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극단적 긍정주의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의 열쇠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한 단면임과 동시에 또 다른 불행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과는 차이가 있지만, 나 역시 지금 코칭계는 물론이고, 자기계발계에 만연하고 있는 무조건적 긍정주의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혹시 그런 것을 코칭이라고 알고 있는 코치가 있다면, 그것은 코칭이 아니라고 확실히 일러두고 싶다. 분명히 그것 또한 인간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단계에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궁극적인 솔루션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저자 역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긍정과 부정, 혹은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서 통합적 시각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저 긍정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며, 긍정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맺음말에 가서는 통합적, 균형적 시각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기는 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의 여지를 열어놓고 있지 않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모두 사이비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의 실수라면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몇 가지 점들이 책을 반쪽짜리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저자의 시각이 좀 더 넓고, 깊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지기 보다는 이 책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특히나, 넓게 자기계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인간의 잠재력 개발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코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고 있다. 코치는 어떤 직업을 지칭하는 명사가 아닌 하나의 유행이, 하나의 수식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저 어디서 주워들은 단편적 지식들로 무장한 채, 현란한 용어를 써가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바쁜 이들이 많다. 저자가 비판하고자 했던 대상은 아마도 이런 이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접근은 잠깐 통증을 잊게 하는 진통제의 역할을 할 뿐, 진정한 변화와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결국 관련 산업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꼴을 만들게 될 뿐이다.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은 혹시 나의 모습이 아닌가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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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오랜만에 트윗을 했다. 몇 달 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켄 윌버의 <에덴을 넘어>를 읽다가, 몇 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어 그 내용을 올렸다.

1. 자기계발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 되어야 한다.

2. 인간의 성장은 전일성을 향해 나아감이며, 분리된 것을 통일시키고 흩어진 것을 다시 모으는 것이다.

새로운 통찰은 아니지만, 아직도 자기계발이란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만큼 이는 중요한 메세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자기계발의 목적에 대한 몰이해는 대중은 물론이고 전문가라 불리는 많은 비전문가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각자 용어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물질적, 사회적 성공으로 결국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언인가를 고민해 본다면, 이를 단순히 용어에 대한 정의의 차이로만 놓아두기는 어렵다.

자기계발의 목적이 성공, 그 자체여서는 안 된다. 성공은 결국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의 초점은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바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 나 자신에게 있다. 나 자신의 성장에 있다. 성장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다. 성장은 자신이 더 커지는 것이다. 예전보다 더 커다란 내가 되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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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이것들은 미래에 있다. 우리는 아직 성공하지 않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현재로부터 출발해 저 먼 미래에 위치해 있는 "성공"과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 생전에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이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방법이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취한다. 서점에는 눈과 손을 잡아끄는 현란한 문구로 치장한 책들이 우릴 유혹하고, 별 영양가 없는 몇 만원짜리 강의부터 수 백만원에 달하는 자기개발 프로그램까지 수많은 노하우들이 난무한다. 매번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크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우리는 다시 그것들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는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영양가 없었음을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인정해야 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랴. 탓할 사람은 없다. 오로지 내가 못난 탓이 아니던가? 의지력이 약하고, 끈기가 없는 나의 탓일 뿐이다. 그래도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지는 않은데, 매번 제 자리 걸음인 것 같아 마음이 한 없이 답답하다.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성공과 행복을 대하는 태도이다.

갖가지 자기계발, 성공론, 행복론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수많은 이들이 성공과 행복의 전문가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앞다투어 관련 상품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적어도 나(여러분 자신)에게만큼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처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한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이 강하고, 끈기가 있는, 즉 뼈빠지게 노력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자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같이 의지박약의 인물에게는 그림의 떡 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친절하게도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안내해주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 길을 걸어갈 힘이 없다. 그것이 문제이다. 방법은 많으나 정작 나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나에게도 통하는 다른 방법이 한 가지는 있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에 의지해 또 다른 것을 찾아 오늘도 해메이는 것뿐이다. 그러한 방법이 정말 있을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 그것을 찾아내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미천한 견해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성공과 행복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철저하게 다시 파해쳐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그 목적지에 '성공' 또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원하는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의지나 끈기,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연료인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연료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성공론, 행복론, 자기개발론은 이러한 연료가 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그 연료를 아낌없이 불사르라고 외치는 다소 기괴한 모습의 이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몸이 쇠약해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열심히 운동하라고 외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연료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이 지금 많은 사람이 풀고 싶은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기본 전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진짜 문제는 행복과 성공을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로 설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100억의 돈을 버는 것은 먼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100억이 곧 성공이며, 행복이라는 '100억=행복=성공'의 공식은 틀린 것이다. 아파트를 사는 것은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행복=성공'의 공식을 잘못된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 인기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은 도달해야 될 목적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기와 명예=행복=성공'의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료, 즉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지금껏 의지, 노력, 끈기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게 그러한 연료가 없어 보인다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 난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껴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와 끈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던 그 밑의 근본적인 에너지, 그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뼈를 깎는 고통을 오로지 의지력에 의해 견디어 낸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힘들다. 혹은 그렇게 도달한다 한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꿈에 그리는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도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연비가 높은 연료이다. 우리가 노력이라고, 의지력이라고, 끈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에너지에 대해 붙은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고,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껴야 노력도 할 수 있는 것이며, 의지력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오로지 행복을 목적으로만 설정함으로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리 재미없는 것, 혹은 더 나아가 매우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로지 자신의 하찮은 의지력으로 모든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의 승률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력한 의지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라.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경우만 돌아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즐기는 자를 따를 자는 없다는 공자의 말이 어떤 의미일지 다시 한 번 새겨보기 바란다. 이것은 자기계발의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그렇지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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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직업이나 직장을 바꾸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꽤나 큰 일에 속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더군요. 저 역시도 직장 또는 직업을 바꾼 전적이 몇 건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전적이 꽤나 화려한 사람이죠. 그렇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마음 속에는 품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
"과거의 나는 지금부터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갖기에 별로 이상할 것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지난 날의 나를 설명했던 모든 것-과거의 습관, 좋아했던 것들, 자주 만나던 사람들 등-으로부터 나를 멀리 떨어뜨리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과거와의 단절에 대한 그러한 강박관념이 오히려 완전한 새로움을 방해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떨어져나가려 한들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떨쳐내려 애썼던 과거의 모든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훌륭한 밑재료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훌륭한 재료들이지요.

진정한 변화는 과거와의 단절 혹은 분리가 아닌, 그것을 포용하고 한 단계 올라서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입니다. 과거의 자신을 발판으로 삼아 그것을 딛고 올라서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자신의 지난 인생을 잘 돌이켜 본다면 의외로 건질 것이 많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자신 혹은 타인의 모습속에서도 건질 것이 많을 것입니다. 발 디딜 것이 없는 도약은 이루어내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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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당신은 의지가 약하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 1순위 의지력의 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매번 중도포기라는 쓰디쓴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하는 이 말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들의 말처럼 그들이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들은 굳이 변화하려고 애쓰고 매번 실패를 경험하며 좌절하기보다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깨끗이 인정하고 속편히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지력이 약하다는 말은 그야말로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한 아주 그럴듯한 변명거리일 뿐이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굳이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에너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말 그대로 생명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가 사용됩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의지력, 노력, 끈기와 같은 것들도 결국 에너지를 의미하는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국 의지력이 부족해서 변화에 실패한다는 말은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자신이 의지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곧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정말 그런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루는데만 에너지를 쓰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데에도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에너지를 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지력의 부족, 즉 에너지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변화에 써야할 에너지를 엉뚱하게도 다른 곳에 써버리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공부하는데 써야할 시간을 TV보는데 써버리면 공부할 시간을 없어집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 이는 바꿔말하면 내가 공부하는데 써야할 에너지를 TV보는데 써버렸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즉 난 의지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의지력을 항상 엄한데 쓰고 있기 때문에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쓸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를 악물고 나의 의지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의지력(에너지)이 내가 쓰고자 하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그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잠재력이고 가능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자신의 약한 의지력을 탓하며 인생을 고민과 후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하고 큰 일, 그것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당신에겐 예전부터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하는 것만이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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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인간에게 변화란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변화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는 나의 개인적인 것만 해도 수 없이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 대신에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인간에게 변화는 정말 그렇게 어려워야만 하는 것인가?"

잠시 망설여지긴 하지만, 이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이 질문에 까지 "그렇다"라고 대답해야한다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테니 말이다. 그렇다. 인간의 변화란 것이 반드시 어려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끔씩은 남들이 죽도록 어려워하는 일들도 쉽게쉽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나 자신은 평생토록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다가 끝낼 법한 일도, 독하게 마음 먹고 단번에 해치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의 변화란 것이 꼭 그렇게 어려워야만 하는 법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내가 모르고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뭔가가 무엇일지 진지한 탐구가 필요한 때이다.

*
“방법은 백만 가지도 넘지만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무수한 방법 중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제대로 골라낼 수 있다. 원리는 무시하고 방법만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2009년부터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다. 원더걸스가 빌보드 HOT100 차트에 진입했던 것이다. 아시아 가수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그녀들과 프로듀서 박진영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좌충우돌 힘겨운 도전기를 소개했다. 또한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비(RAIN)는 영화 '닌자 어쌔신'의 주인공을 맡으며, 국내 배우 최초로 헐리우드의 단독 주연을 맡는 대기록을 세웠다. 연예계뿐 만이 아니다. 이미 전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피겨여왕 김연아는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감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록으로 보자면 금메달을 한 개 더 걸어도 될 법한 기록이었다. 앞으로 더더욱 커다란 성장과 성공의 길을 걷겠지만, 이들은 이미 큰 성공을 이루어 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러한 기록,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례를 사례로만 기억하길 원치 않는다. 사람들의 이러한 욕구는 사례를 바탕으로 한 '모델'을 낳게 한다. 누군가의 성공 사례를 다른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모델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바로 자기계발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의 변화를 가장 현대적인 맥락으로 표현한 말이 아마도 '자기계발'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기계발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가고만 있다. 서점엔 자기계발 코너가 따로 있으며, 그 코너에는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삼아서 책을 읽는 나조차도 소화하기에 벅찰 정도의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사례와 모델에 해당한다. 자기계발을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다. 바로,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의 내용이 거기서 거기이며,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읽다보면 나중에는 그 내용에 식상하고, 더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내용이긴 하나, 자신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누군가는 분명 그 모델을 가지고 성공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겐 잘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통할 때까지 그것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풀기 어려운 의문점들이 너무나 많이 만나게 된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모델은 그 사람의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모델이 분명 의미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려 하기보다는 마치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궁극의 솔루션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성공확률이 낮을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근사한 옷맵시를 뽐내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실패는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델에 앞서 ‘원리’이다. 모델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리가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에 필요한 것이다. 원리는 말 그대로 원리일 뿐, 그것이 방법까지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원리는 수많은 모델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만들어진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원리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알던 모르던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테니 말이다. 여러 모델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들, 그것들을 추출하여 정제해 낸 것을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리마다 각각 그 수준이 다를 것이다. 얼마나 순도가 높냐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된다. 모델들의 공통점에서 추출한 원리가 있는가하면, 그러한 원리들이 가진 공통점을 뽑아 만든 ‘원리의 원리’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원리의 원리의 원리’도 생각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우리의 변화와 성장, 성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보다 상위의 원리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보다 높은 차원의 원리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모델을 골라낼 때, 제대로 된 것을 고를 수 있다. 물리학의 법칙과 같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이 있다. 세상은 이러한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직 인간의 변화에만 이러한 법칙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
“우리는 문제를 계속 반복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우리가 너무 우둔하여 해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 켄 윌버 Ken Wilber

나는 지금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노트북을 올려 놓은 책상, 이것들은 일종의 구조물이다. 의자라는 구조물이 있어 나는 그곳에 앉을 수가 있고, 책상이라는 구조물이 있어 나는 그 곳에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의자와 책상은 각기 자기만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모양에 맞추어 나는 앉을 수가 있고, 그 모양에 맞추어 노트북을 그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의자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피라미드 모양이라면 나는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책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자나 책상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동안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의 모양에 의해 지배받는다. 의자와 책상이라는 구조물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의자가 우리를 거기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책상이 노트북을 거기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제 스케일을 좀 더 크게 가져가 보자. 이제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방이다. 이 방에는 책장이 있고,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적절하게 배치가 되어있다. 그러한 가구 배치는 또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가구배치는 그 방 안에서 나의 동선을 결정한다. 같은 방안의 공간이지만 가구가 놓여있는 곳에는 내 몸을 들이밀 수가 없다. 나는 가구를 피해다녀야 한다. 가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 가구의 배치가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 내가 있는 이 집은 어떠한가?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집은 어느 건축설계가에 의해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설계는 나를 포함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수많은 주민들의 동선을 결정했다. 집이라는 구조가 나의 동선을 결정했고, 나는 좋던 싫던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수리가 가능하겠지만) 이미 주어진 구조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아파트라는 구조도 그렇다. 그것은 단독주택이 아닌 수많은 세대가 함께 사는 단지이다. 층수가 높다. 우리집은 12층이다. 나는 우리집을 들락거릴 때마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이유는 하나이다.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상이나 의자의 배치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구조이다. 아파트 내에서의 나의 행동은 그 그조로 인해 거의 영구적으로 결정된다.

의자, 책상, 집, 아파트는 우리 눈에 보이는 구조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구조만 있을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구조는 없는 것일까? 인간은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인간처럼 변화무쌍, 예측불가능한 존재가 있을까도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동에는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흔히 우리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변화가 그렇게 쉽다면 변화 때문에 고민하는 개인과 조직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싶고, 두려움없이 도전하며 매일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도 돌아보면 매번 제자리 걸음인 것 같은 것이 또 인간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변할 수가 없는 것일까? 인간은 왜 반복적인 패턴을 보이며, 평생을 노력해도 그러한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아파트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수 천 마리의 새들이 떼지어 날아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없으신 분을 위해아래 링크주소를 덧붙인다). 그 많은 새들이 동시에 같은 장소를 날면서, 단 한 마리도 부딪치지 않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고기들을 어떨까? 물고기들 역시 수 천, 혹은 수 만 마리가 떼지어 다니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그들 역시 단 한마리도 충돌사고를 내지 않는다(역시 링크주소를 덧붙인다). 언뜻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교통사고를 내는 인간 세상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움직임은 정말 예술의 경지라고까지 할 만하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 많은 개체들이 마치 하나와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혹시 이들의 움직임에도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구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행동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은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그 구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평생을 가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지상에서 아파트 12층까지 단 번에 오를 수 없다. 그리고 확실치는 않지만, 인간이 변하고 싶어도 변화하지 못하고 평생 비슷한 패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의 존재에 아주 강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떼지어 나는 새들: http://www.youtube.com/watch?v=nffdc9sLYnY


떼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 http://www.youtube.com/watch?v=_tGOKngtk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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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은 스포츠 경기와 같다. 인생이라는 경기에 참가한 인간들은 저마다 그 곳에서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친다. 어떤 사람은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어떤 사람은 평생 후보선수로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인생을 끝마친다. 축구에 비유를 해보자.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경기장이 필요하다. 축구의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경기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경기가 아니다. 축구장 양쪽에는 양쪽 편의 골대가 있으며, 가운데에는 양쪽을 가르는 중앙선이 있다. 축구장은 하나의 구조이다. 그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 구조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경기장 밖에서 골대로 공을 차 넣는다한들 골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 구조를 무시하고서 경기를 펼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어겨서도 안된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반칙이다. 축구경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훈련에 앞서, 이 경기장이라는 구조와 규칙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이 스포츠 경기와 같다면, 우리는 구조와 그것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삶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명시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따라야 할 구조와 규칙들이 있다. 구조와 원리를 모르고 하는 게임, 그 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가 우리의 삶이라는 게임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이 알고 있는 변화의 원리는 무엇인가?
당신이 지금까지 변화를 위해 삶에 적용해 온 방법들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었는가?
삶이 하나의 게임이라면 당신은 그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알고 경기에 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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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의지력이란 에고 또는 페르소나 편에서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와중에 유기체 또는 환경적인 면들을 억제하려는 선형의 일치된 노력이다." - 켄 윌버 Ken Wilber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자기계발계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해(?) 보이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답은 바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강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나약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자신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켄윌버의 한 마디는 이러한 해답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매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의지력은 자신의 다른 쪽 면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용기라고 이름 붙인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며, 무기력한 나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열정이라고 이름 붙인 의지가 필요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게임에 반드시 승,패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도 질 수 밖에 없는 게임도 있습니다.

Posted by 최코치

부제: 문제해결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사람구실을 하며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성적이 안나오는 것도 문제고, 경제상황에 좋지 않아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취업을 해도 한 직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가 힘들다 하니 그것 또한 문제입니다.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속을 썩이는 것도 문제고, 자식이 혹은 부모가 속을 썩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남들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문제고, 남들보다 학벌이 안 좋은 것도 문제고, 남들보다 직장이 안 좋은 것도 문제고, 돈을 많이 벌어도 사는게 재미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도 문제고, 몸짱이 아닌 것도 문제고, 더 비싼 옷, 더 비싼 차를 사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도무지 지금 닥친 문제는 고사하고 앞으로 생길 수많은 문제들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것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인생이 높고 험난한 산을 하나씩 넘어가는 과정같이 느껴집니다. 하나 넘으면 더 높은 것이 나오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산 말입니다.

이렇게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겪다보니 사람들은 문제를 풀기 싫어합니다. 되도록이면 문제를 만나지 않고 피해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요즘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문제를 만나면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고치고 나면, 그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해결되었다기보다는 '해결된 것 처럼 보인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쉬운 예로 벌써 몇 년째인지도 기억하기 힘든 취업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취업하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래도록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간단한 답을 내립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답이다.  그래서 그 답을 얻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일까요? 겉으로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맥락을 확장시켜 직업이라는 것을 갖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업을 갖는 근본적인 이유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혹 자신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먹고 사는 것 부터가 행복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경제상황이 안 좋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간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닌 문제를 키운 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이유 중 몇 가지를 짚어볼까 합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문제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혹은 진짜 문제라는 것은 무엇인지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긍정적인 관점와 부정적인 관점에 대한 예를 들 때, '물 반 컵'의 비유를 듭니다. 정확히 컵의 절반 만큼 들어 있는 물을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있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물이 반이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고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에겐 그것이 문제로 인식되는 반면, 다른 이에겐 문제가 아닌 기회로 인식됩니다. 이 비유를 보면 인간이 만들어 낸 많은 문제는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내부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컵에 물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은 문제인가?"라는 것입니다. 앞서 든 예에서와 같이 인간의 관점을 긍정과 부정, 두 가지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이는 분명 어느 관점을 갖느냐와 상관없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결국 긍정적인 사고라는 것도 어느 상황에서나 다 통하는 것 같지는 않아보입니다.

이는 인간이 세상을 보는 이분법적 혹은 이원적 관점, 그 자체가 지닌 한계입니다. 또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계발 분야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변화하길 원하고 성장하길 원합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본성의 일부가 현대적인 맥락으로 발현된 것을 지금 우리는 '자기계발'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의 자기계발은 이처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자연스러운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미처 대중들은 문제로 인식하지도 않던 것들을 문제로 만들어가며, 그 문제들에 대한 일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느라 급급하다는 느낌입니다. 근본적인 잠재력을 개발하기는 커녕, 수많은 문제들을 힘겹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일까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것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양자론이 전하고 있는 가장 충격적인 통찰 중의 하나인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은 이에 대한 크나큰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의 물 반 컵의 예에서처럼 인간은 반드시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렇다면, 둘 다 선택하거나 혹은 둘 다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순한 인과론적 사고 역시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임시방편의 해결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더 많은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초등학교 학급의 면학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이 학교에 핸드폰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수업시간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거나, 학생들이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취한 조치입니다. 과연 학생들이 핸드폰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한다고, 아무도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고 면학분위기가 좋아질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들 간의 연락체계 단절과 같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부작용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는 사회적인 현상이나 제도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들 역시 자신이 떠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짜 원인도 아닌 것을 원인으로 생각하며 이를 교정하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하지만, 맥락이 조금만 확장되면 그것이 진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더욱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사실 원인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 개봉했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보신 분이라면 주인공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드)의 상대역인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입원한 데이지를 찾아가며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과정을 들려주는 벤자민의 독백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문제들의 원인은 결국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의 지난 블로그 포스트(http://choicoach.com/196)를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맥락의 확장은 결국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위와 같은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작게는 자기계발, 크게는 인생에 있어서 그동안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었던 접근방식에 대해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인생이란 것이 살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을 그때 그때 해결해나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 말입니다. 혹은 우리가 그 동안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문제가 아닌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 되었건 누구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그것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길 원할 것입니다. 현재 양자론을 비롯한 최신과학 이론들은 하나 같이 그동안 우리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왔던 수 많은 견해들을 뒤흔들며, 이전엔 결코 풀기 어려웠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풀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변화와 성장과 관련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잠재력 개발 분야에서도 최전선에 서있는(필자의 개인적 견해임) 코칭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필자 또한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그 변화의 물결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마음을 열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문제해결의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자의 위치가 언제나 동일한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되며, 또 "전자의 위치가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가 어떤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에서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되며, "전자는 정지해 있는가 어떤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된다. 그러면 "그것은 운동하고 있는가 어떤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우리는 역시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 Robert Oppenheimer

Posted by 최코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변화에 대해 말합니다. 변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작은 변화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며 좌절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에서, 그리고 전문가들이 변화의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도 코치의 길을 걷기로 결정을 한 후, '과연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칭은 3가지의 기본 철학를 기반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코칭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이 3가지 기본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 중 첫번째는 바로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치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꽤 긴 시간의 코치훈련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이 전제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렇다는 믿음만 갖고 있을 뿐 그 가능성과 잠재력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뚜렷하게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 하나가 그것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치가 되어 걷는 길에서 시작부터 만나게 된 커다란 벽을 하나 허무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그 큰 벽을 허물어 준 단어는 바로 "에너지"였습니다. 에너지. 꽤 오랜 시간동안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저에게 이 단어는 분명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 하나로 인간의 변화에 대해 품었던 꽤 많은 궁금증들을 풀어 낼 수 있었습니다.

과학에는 무슨무슨 법칙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에너지 보존 법칙'입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바로 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열이 에너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조차도 열을 에너지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열을 그저 하나의 화학작용으로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마이머, 헬름홀츠, 줄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열을 포함해 에너지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그것들은 다른 종류로 변환될 수 있지만,  모든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에너지 보존 법칙의 내용입니다. 이후 1905년 아인슈타인은 E=mc^2이라는 유명한 공식을 발표합니다. 질량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에너지 질량 보존 법칙'이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변화'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변화의 근본은 결국 에너지의 변환으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변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거나 그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변환이라는 관점에서 본 변화와 인간의 변화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코칭의 첫번째 철학에서 언급한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도 이를 바탕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전제는 단지 코칭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을 업으로 삼고 있는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기본 전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잠재력, 가능성, 또한 변화의 본질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에너지"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코칭이라고 하면 대부분 대화모델을 기반으로 한 방식의 코칭을 말합니다. 질문과 경청을 기반으로 한 대화위주의 코칭에서도 코치와 고객 간에는 에너지 교류가 이루어지며, 에너지의 개념을 몸으로 알고 있는 코치라면 반드시 이를 염두해 둘 것입니다. 하지만, 고객의 잠재력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분명 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부 코치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에너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에너지 기반의 코칭은 물론이고, 이를 넘어 의식기반의 코칭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돕는 방법을 찾던 중, 에너지와 의식 기반의 코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SK(Specialized Kinesiology)는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의 접근을 보완하여, 인간을 디지털 정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서 이러한 시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변화는 여러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그 차원에 맞는 방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코치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을 하는 대중들 역시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런 폭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 중에서도 변화의 근본을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변화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매번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몰랐던 그들의 성공의 비밀 등 많은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들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최코치



독서와 코칭을 통한 미래형 자기계발조직 <Read & Grow Rich>에 참여할 멤버를 모십니다. 좋은 책을 제대로 읽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알아야할 필수 학문들을 학습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12명 소수로 진행되는 과정이며, 지난 6월 8일 오프닝 강좌에 참석하신 분들 중 현장에서 합류를 확정하신 분들 외에 3~4분을 더 모시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께는 요청하시면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오프닝강좌에서 사용된 강의안을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 오프닝 강좌의 안내문을 참고하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영양가 없는 자기계발 서적을 읽는 것에 지치신 분들
- 자신의 경쟁력 고양을 위해 공부를 하고 싶으나, 무엇을 공부할 지 몰라 방황하는 분
- 학위나 자격증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 원하시는 분
- 어느 분야에서 일하건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는 근본 원리들을 탐구하고자 하는 분
- 시대에 맞는 최신 학문들을 접하여 이를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원하는 분
- 성공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시는 분

* <Read & Grow Rich>의 참가자들은 2주 ~ 4주의 기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읽게 될 것이며 (1년에 15 ~20권), 오프모임 시에는 코치가 책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라이프 코칭, 그리고 책의 컨텐츠를 삶에 적용하는 방법 등을 제공합니다. 책을 읽고 모여 토론하는 독서모임이 아닙니다. 물론, 잠깐씩 할 수도 있습니다. ^^ 주로 읽게 될 책의 분야는 돈(부자마인드), 미래학, 경영, 1인 기업, 코칭, 감정/의식, 커뮤니케이션, 자기계발, 최신 과학이론에 이릅니다.
일정기간 단위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아닌, 월(혹은 3개월) 단위로 비용을 납부하고 언제든지 가입과 탈퇴가 가능한 상시 진행 프로그램입니다. (헬스클럽과 같은 운영방식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

기본운영방안
일시 : 2009년 6월 23일(화) 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30 ~ 9:30
장소 : 토즈 종로점 (첫 수업만 종각역 부근 윙스터디에서 진행됩니다)
* 본 과정은 스터디 모임이나 독서 모임 아닌, 유료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강사/문의 :
코치 최지환 (코치앤코칭 대표)
coach@choicoach.com
http://choicoach.com

Posted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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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하는 남자의 코칭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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