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반면, 원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주저없이 나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것을 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그것이 방법상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마이클 로지에 Michael Losier

당신은 이상형이 있는가? 당신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이 이미 결혼을 한 기혼자라도, 낙담하지 말고 과거 당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이상형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라. 키는 얼마나 되는지, 얼굴은 계란형인지 호빵형인지, 몸매는 어떤지, 손가락은 어떤지, 발가락은 어떤지, 성격은 어떤지, 직업은 어떤지 등등 가능한 구체적으로 당신의 이상형을 그려봐라. 잘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상형에 대해서는 대체로 할 말이 많아 보인다. 한가지 문제라면 그 이상형이 과연 자신을 좋아할까에 대해서는 그리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일테지만 말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잘 대답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 원치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술술 잘 이야기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싫고, 돈을 조금 밖에 못 버는 것이 싫고, 취업하기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든 이 사회가 싫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머뭇거릴 때가 많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변 사람들의 단점, 약점은 아마도 다들 귀신같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장점, 강점을 보는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처럼 사람을 보는 눈이 안 좋은 것을 보는 쪽으로 굳어지면, 그것은 불행하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자신의 장점과 강점을 보기 보다는 마음에 안드는 점, 고치고 싶은 점 만을 쉽게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점점 행복과 멀어져 가게된다. 어쨌든 우리는 이상하게도 원치 않는 것들은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를 때가 많다. 원치 않는 것들을 거부하여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봤자 얻는 것은 스트레스 뿐이다.

꿈의 직업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직업에 대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직업에 대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원치 않는 것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 우리가 진정한 원하는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싫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출근을 좀 늦게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출근 시간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의 상사가 매일 같이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며 당신을 괴롭히는 것이 싫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좀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말이 통하는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으로부터 원치 않는 것을 정의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마이클 로지에는 그의 책 <끌어당김의 법칙>에서는 이처럼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을 대립항 Contras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원치 않는 것을 말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이렇게 대립항을 만들어 놓고, 이것들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 -> 출근 시간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싶다.
교통이 불편한 것  ->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다.
사무실이 더러운 것  ->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일이 시시한 것 -> 자극이 되는 도전적일 일을 하고 싶다.
일이 따분한 것 ->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직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원치 않는 것들, 바꾸었으면 하는 것들을 적어보라. 지금 당장 직업이 없더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50개가 되었건, 100개가 되었건 있는 대로 모든 것을 적어봐라. 가능한 많은 것을 적어라. 쉽게 쉽게 떠오르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계속 적어나가다 보면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부유물이 가득 떠 있는 물을 조심스럽게 한 바가지씩 퍼내다 보면, 나중에는 맑은 물만 남아 밑을 훤히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라. 이 모든 과정은 당신의 깊은 의식 속에서 짐자고 있던 것들을 깨워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종이에 끄집에 내어 당신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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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영적 스승 오쇼 라즈니쉬는 말했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다고. 신도 이 우주도 세상의 모든 진리도 우리 안에 있다고. 단지 오쇼 뿐만이 아니다. 소위 깨달음 얻었다고 하는 이들이나, 영적구루의 칭호를 받고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모든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가도 결코 관심이 가지 않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 그것도 여러 영적 스승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바로 "내 안"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입시경쟁에 시달린 고딩시절 부터였을까? 시간이 남아돌아 노는데 정신없었던 대학시절부터였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살았던 군대시절? 그것도 아니면 왜 사는지는 모른 채 그냥 사는게 원래 이런가보다 했던 사회초년병 시절?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내 의식 속에서 나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부유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난하면 먹고사는데 급급해 내 안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가난하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아무튼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서서히 내 안으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도 없었고, 찾는 방법도 몰랐다. 내 안에서 무엇을 도대체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책을 통해 여러 스승들의 말씀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을 찾을 수 있을 법하다.

무(無) : 아무것도 없다. 그래. 항상 그랬다. 내 안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저 밥 먹으면 밥이 있고, 드라마 속의 인물처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런가 보다 했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없겠거니 했으니, 관심을 가졌을리도 없었고 무엇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안에 아무것도 없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우리 의식의 방향은 내면으로 향하게 되는 듯하다.

에고(ego) : 이 말은 여러 곳에서 쓰이는 듯하다.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된다. 프로이트가 쓰기도 했고, 오쇼의 책에도 나온다. 대체로 '진정한 내가 나라고 믿는 허상' 정도로 해석된다. 결국 이 에고라는 허상을 깨부수고 진짜 나를 찾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이나교도들은 깨달음을 얻은 자를 아리한따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적을 죽인 자'라는 뜻으로 적은 곧, 이 에고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 녀석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다. 안에서 진짜 자신인 척하며, 우리가 사회 속에서, 문명 속에서 길들여져 온 대로만 살도록 만든다. 누군가 변화하고자 한다면, 그 변화를 이루는데 가장 큰 적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에고를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작게는 변화하지 못하고, 크게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기질(氣質): 내 안엔 이런 것들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질이란 에고의 기질이 아닌, 진짜 나의 기질일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는 것들이다. 기질을 파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많은 종류의 검사가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이것의 결과로 나온 것들이 진정한 나의 기질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에겐 그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신과의 대화, 자기 성찰이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 더 맞는 듯하다.

강점(强點) : 이런 것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질에 포함되기도 한다. 기질 중에서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그것이 강점일 것이다. 이걸 알고 있으면 세상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참 평등하게도 사람마다 한 두가지 이상은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잘 써먹지 않으려고 한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찾아서 써먹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찾은 것들이 별로 쓸모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잘 조합하고 머리를 굴려보면 의외로 쓸만한 것이 나오기도 한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야말로 강점은 그게 무엇이냐 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런 것을 찾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성(神性): 오쇼는 우리 안에 신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강조한다기 보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유일한 메시지이다. 그래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 한다. 도시의 하늘이 온통 매연으로 가려진 것처럼, 우리 안을 가리고 있는 짙은 구름들을 걷어내고 보면,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라 한다. 이 신성을 경험하기 위해서, 찾기 위해서, 얻기 위해서 구도자들은 명상을 한다.

천복(天福): 조셉 캠벨의 말이다. 신성과는 비슷한 의미 같기도 하고 다른 의미 같기도 하다. 아무튼 캠벨은 천복을 따를 것은 대단히 강조했다. 그러면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했다. 하늘이 내린 복을 따르는 것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결코 찾기 쉽지 않다.

길(道): 오쇼의 자서전 제목은 '길은 내안에 있다'이다. 내가 가야할 길, 내가 찾아야 할 길, 내가 도달해야 할 길은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 결국 중요한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이 모든 것들. 그 무엇이 되었건 우리 안에는 정말 많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위대하다. 이것들 중 하나만 제대로 찾아도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식은 많이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답답하다.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있는 이것들을 찾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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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언어기술은 단어선택, 코칭 받는 사람의 언어 사용, 전달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단어선택

우리는 단어에서 똑같은 단어를 사용에도 서로가 생각하는 그 의미는 차이가 큰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처럼 단어의 의미차이는 문맥에 따라서 발생하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집단, 연령, 성별, 지역, 사회계층 등 모든 환경에 의해 발생된다. 이처럼 서로 간에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 차이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코칭 대화 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코칭 대화 시 특정 단어에 대해 서로가 같은 의미를 떠올리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코칭 받는 사람은 물론이며, 코치 자신도 자신이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항상 인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코칭에서 사용해야 하는 단어는 어떤 것인가? 이는 세계적 세라피스트인 데이비드 그로브(Daivd Grove)가 말한 ‘깨끗한 언어(Clean Language)'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코칭의 경우에서 깨끗한 언어는 코치의 전제나 암시,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언어이다. 코칭 받는 사람의 존재를 완벽하게 인정하는 코치가 자신의 판단이 배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간결하고 명료해야 하며, 항상 코칭 받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언어이어야 한다.

코치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히 정보전달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 코칭 받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때로는 머리와 가슴을 연결시켜야 할 때가 있다. 이 때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스토리텔링과 은유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훈계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여야하며, 이러한 방법으로 적절한 것 중 하나가 스토리틸링이다. 코치는 스토리텔링을 하기 전에도 반드시 "제가 ~ 이야기를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와 같은 허락을 구한 후에 진행할 뿐 아니라,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코치가 이것은 어떠한 교훈을 가지고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철저하게 코칭 받는 사람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과의 연관성을 찾고, 교훈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이야기는 코칭 받는 사람의 현실과 관련성이 높아야 하며, 감정과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갖추어야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은유는 "성공의 계단을 오르다", "불가능의 벽을 깨부수다"와 같이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어보이는 상황 사이의 유사성을 이용하게 된다. 은유의 비교대상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두 비교대상 사이의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은유는 결국에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서로간의 그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실제 코칭 과정 중에 고객이 현재의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돕기 위해 이에 대한 질문을 했을 경우 "갈림길에 서있다.", "나침반 없이 바다에 떠 있는 기분이다"와 같이 고객 스스로도 은유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장황한 설명보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해 준다. 그리고 또한 이 같은 은유를 사용했을 경우, 이를 다음 질문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예를 들면 "갈림길에 서있다는 것이 지금의 상황과 어떠한 면에서 같다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러한 은유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코칭은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현재의 상태에서 원하는 미래의 상태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코치 받는 사람이 현재의 상태와 원하는 상태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단어를 찾아내는 것은 상황을 전환시킬 당사자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뜻이 분명한 두 단어는 자신의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서 전환이 얼마나 진행 중인지 평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 두 상황 사이의 명확한 차이는 더 큰 동기유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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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알아본 바로는 딱히 이렇다 할 훈련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방법이 경청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약간씩 다른 말로 표현했을 뿐이며, 그 어느 곳에서도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진정한 경청이란 코칭 받는 사람에게 최대한 집중해서 단순히 말의 의미만이 아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나서는, 이를 위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다른 것에 주의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초점에 맞추어 집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코칭 과정 중 코치를 괴롭히는 것은 코치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대화이다. 에고(ego), 그레믈린(Gremlin) 또는 오리라고도 불리우는 이 내면의 소리는 그야말로 코치의 집중력을 깨고 경청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다. 나 역시 코칭 뿐 아니라,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마다, 이 내면의 소리를 잠재우지 못해 여간 방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잠재울 확실한 방법은 다름 아닌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느 대화에서나 수백 가지의 사항들 중에 정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코칭 받는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것, 즉 코칭의 포커스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는 토익이나 토플 등의 Listening Test 시에 모든 대화 내용을 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핵심 키워드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나의 경우에는 코칭 세션에서 집중력을 높이고, 경청하기 위한 방법으로 코칭의 키워드를 찾아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키워드는 단순히 코칭 받는 사람이 사용한 단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대화 중에 키워드를 찾기 위해 집중함으로써, 코칭 받는 사람의 말 뿐만 아니라 그의 감정 상태나 기분 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 내고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순수한 욕구와 흥미를 가질 때 쉽고 강하게 집중할 수 있다. 마치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정말 눈 깜짝할 순간에 혀를 내밀어 파리를 잡아먹는 개구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발휘하는 개구리의 집중력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집중력으로 인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코치 또한 코칭 과정에서 코칭 받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도록 돕기 위해 코치로서의 기본적이고 순수한 욕구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는 자신이 왜 코치가 되었고, 코칭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항상 각인하고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코칭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티모시 골웨이(Timothy Gallwey)는 그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이너게임(The Innergame of Work)'에서 집중에 대해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집중이란 우리가 집중하는 것을 막는 어떤 것을 산란(distraction)시켜버리는 것이다. "

결국, 티모시 골웨이의 생각을 빌리자면, 가장 확실한 경청의 방법은 코치의 내면의 소리를 완전히 잠재우는 것이다. 코치들의 집중력을 가장 방해하는 내면의 소리는 대부분이 "코치의 판단"일 것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로 접어든 것 같이 느껴지는 고객, 다음에 해야 할 질문, 더 강력한 효과를 주기 위한 방법, 고객이 말한 것보다 더 좋은 방법 등이 머릿속에 떠다닌다는 것은 곧, 고객은 무엇인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코치 자신도 코칭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거나 그럴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의 그 존재감과 완전함에 대한 인정을 기본으로 하는 코칭의 근본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코칭에의 집중과 경청에 대한 문제 역시,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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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Coach/컬럼] - [코칭컬럼] 코칭에서의 경청 (2)
[For Coach/컬럼] - [코칭컬럼] 코칭에서의 경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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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여부는 코치의 의식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코치의 의식은 당연히 자신이 아닌 말하는 사람, 즉 코칭 받는 사람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마법의 코칭'의 저자 에노모토 히데타게는 경청을 귀로 듣고, 입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는 3단계의 수준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는 이 세 가지 단계의 경청 역시 의식의 방향은 철저하게 상대방에게 향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는 약간 달리 CTI(The Coaches Training Institute)의 공동 창립자인 로라 휘트워스(Laura Whitworth)는 그의 저서 'Co-Active Coaching'에서 경청을 주관적 경청, 상대 중심 경청, 직관적 경청으로 역시 3단계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1단계인 주관적 경청은 기본적으로 코치의 의식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로는 통할지 모르겠으나, 코치의 관점에서는 경청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된다. 코칭에서의 경청은 코치 개인만이 아닌, 반드시 코칭 받는 사람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2단계의 상대 중심 경청에서는 모든 주의와 지각을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 이 외에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속마음, 관심 등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런 코치의 모습을 통해 고객은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치는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흡수하여 그대로 다시 고객에게 반사시켜주는 깨끗한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되야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많은 코칭이 이 단계의 경청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3단계의 직관적 경청은 말 그대로 감각과 더불어 직관을 활용하는 경청방법이다. 이 단계의 경청에서 코치는 그야말로 모든 방향에서 다각도로 듣게 된다. 이는 우리 주변에 수없이 떠돌아다니는 전파의 신호를 온 몸으로 잡아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고객과 주위의 사소한 반응 하나도 놓치지 않고 민감하게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흡수한 정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의 뜻을 직관으로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코치는 고객의 모든 것을 반사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코치는 깨끗한 거울이 될 수 있도록 그 자신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깨끗함은 코칭세션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것은 비우고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은 없어지는 것, 그것이 코치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 둘째는, 코치가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코칭 받는 사람이 알 수 있어야만 진정한 경청이라는 것이다. 코치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의 존재감은 커질 것이고 이는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를 얻고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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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Coach/컬럼] - [코칭컬럼] 코칭에서의 경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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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傾聽 귀를 기울여 들음
경청 敬聽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음

코칭에서의 경청은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갖는다.

경청은 코칭의 핵심이다. 모든 코칭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관문이라고도 한다. 코칭에서의 경청은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청각능력이 아닌, 코치가 가져야할 핵심기술이다. 상대방의 말을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그에게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최고의 경청은 단순히 청각만이 아닌, 가슴을 비롯해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경청이다.

코칭에서의 경청은 코칭 받는 사람의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듣기와는 다르다. 코치는 진정한 경청을 통해 코칭 받는 사람이 진정 누구이며, 어떠한 상태에 있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있다. 코칭에서의 경청은 단지 코치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코치의 경청은 자신 뿐 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 궁극적으로 코치 받는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경청으로 인해 얻는 효과는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Win-Win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을 때, 자신이 인정받고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경청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경청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만든다. 코칭 받는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은 코칭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성공여부를 좌우할 만큼의 중요성을 차지하는 부분이라는 것은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코치의 입장에서 얻는 경청의 효과는 우선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의 증가이다. 단순히 코칭 받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만 듣는 언어적인 정보를 넘어서 표현, 감정, 상태, 주변 상황 심지어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흡수할 수가 있다. 이를 통해 코치는 대화의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초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경청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몰입상태로 빠지도록 이끌어주며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물 흐르듯이 이루어지는 코칭상태에 이르도록 만들어 준다. 따라서 결국 코치는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코칭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코치를 통해 자신이 한 말을 비춰볼 수 있게 된다. 경청에 몰입하여 자기가 들은 것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코치를 통해서 고객 또한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코치의 질문이나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반응을 통해 코칭 받는 사람은 매순간 감정과 의식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즉, 코치의 경청 수준에 따라 코칭세션의 성패가 달라질 것이며, 고객이 얻을 수 있는 결과에도 큰 차이가 난다.

이처럼 코칭에서 경청이 갖는 영향은 실로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대화 속에는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외에도 여러 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코치는 이러한 여러 겹의 층을 벗겨내어 진실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즉, 경청을 통해서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삶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팀장 멘토링 & 코칭(Everyring Coaching & Mentoring)"의 저자 니콜라스 니그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청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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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Coach/컬럼] - [코칭컬럼] 코칭에서의 경청 (3)



Posted by 최코치

얼마 전 우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접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뉴스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나는 그 이야기가 인터넷을 한바탕 휩쓸고 난 후에야 우연히 들을 수가 있었다. 아내를 통해 전해들은 그 이야기는 언뜻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되감아 한 장면씩 떠올려보니, 얼핏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통 그런 류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안 갖던 나조차도 인터넷을 서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궁금했다. 진실은 무엇인지.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가수 나훈아에 대한 괴소문이었다. 자신에 대해 그 정도의 내용이 떠돌고 있는 상황이면 해명을 했어도 여러 번 했어야 할 터인데, 한 마디 말도 없는 그를 뒤로하고 소문은 더욱더 증폭되어 갔다. 소문에 엮인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유명 여자 영화배우들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었다. 사실일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의문은 점점 확신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입을 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했는지, 바지 지퍼까지 열었다. 700여 명의 기자들이 집결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는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낸 언론을 강하게 질타하고는 질문하나 받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광경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진짜라고 확신했건만,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지는 않았을런지. 나조차도 말로는 "그럼 그렇지"라고 했지만, 마음  속엔 알 수 없는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았다. 심지어 내 주위의 몇몇 사람은 바지를 완전히 벗은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 확실히 판명난 건 아니라는 웃지 못할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선화공주님은
남 모르게 짝지어 놓고
서동 서방을
밤에 알을 품고 잔다.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요. 후에 사실이 되긴 했지만, 역사상 최대의 루머 중 하나일 것이다. 서동은 그야말로 루머를 제대로 이용해 팔자를 고친 사람이다. 서동의 그런 영악함이 비범하고 탁월한 재주로 읽혀지긴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헛소문을 퍼트린 것은 사실이다. 요즘 세상이었으면 선화공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받아 처벌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 선화공주는 공주의 신분으로 유배까지 보내지는 수모를 당했건만, 노래의 내용대로 자신의 운명이 이루어졌음에 신기해하며 서동의 아내가 된다. 두 사람 다 루머로 인해 인생이 달라졌다. 소문의 힘은 이리도 강하다.

설마 서동의 헛소문 내는 솜씨가 우리의 국민성은 아니겠지? 우리 사회엔 서동의 끼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소문의 나라"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온갖 소문이 난무한다. 누가 어디를 고쳤다는 것은 소문의 축에도 못 낀다. 시집도 안간 여자 연예인이 모 유명인사의 애를 낳았다는 소문부터 시작해, 뜬금없는 사망설에, 결혼 안한 노처녀 연예인은 레즈비언이 되어야 하며, 노총각 연예인은 어렵잖게 게이가 되는 판국이다. 연예계, 정치계, 경제계 할 것 없이 온갖 소문이 넘쳐난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는 소문은 이제 그 수위와 여파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기자까지 소문을 내는 사람도 다양하다. 사실여부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그냥 입에 담고 뱉기 쉬운 소문만이 있을 뿐이다. 신문을 보면 도대체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순수했던 어릴 시절, 언론만은 진실하다고 믿었던 나는 이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언론조차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이 이번 나훈아씨 사건을 통해서 명백히 드러났다.

나는 진실이 난무하는 사회를 원한다. 멍청하고 순진하게 사람들이 하는 말 다 믿고 살아도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신문을 보면서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나라 국민에겐 서동의 헛소문을 퍼트리는 영악함이 아닌, 신선한 아이디어와 치밀한 기획력,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고 마는 실행력만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최코치

퇴근 후 인생

2008/03/05 21:32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글에 쓰인 모든 인용문의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에서 발췌했음)

9시와 6시. 우리나라 회사들의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이건만, 이 24시간을 온전하게 자기 인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9시부터 6시, 직장에 앉아 있는 그 9시간 동안 당신은 진정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 9시간 동안 당신은 즐겁고 행복한가? 나 역시 이 대답에 결코 자신 있게 "YES"라고 답할 수 없다. 지금도 내 인생은 퇴근 후 저녁 6시 부터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취업난이다. 신문을 보나, 뉴스를 보나, 젊은 사람을 만나건, 나이든 사람을 만나건, 온통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 뿐이다. 직장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고, 공무원이나 공사 등 정년이 보장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 십, 수 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야말로 취업이란 피 터지는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쟁취할 수 있는 전리품이 되어 버렸다. 취업을 못해 놀고먹는 젊은이가 부지기수이며, 취업을 못해 비관자살을 한 젊은이들의 소식도 가끔씩 들려온다.

이런 상황이면, 직장에 들어가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분명 행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직장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서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매달 정확한 날짜에 적지 않은 돈이 정확하게 들어와도, 자신이 그렇게도 원하던 안정적인 직장을 다님에도, 뉴스에서 취업난에 관련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난 백수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행복하다는 사람은 못 봤다. 오히려 스트레스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많이 봤다. 비단 월급쟁이 뿐 만이 아니다.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도,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도, 고등학생들도 다 들 사는 것이 괴롭단다.

나라고 별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내 인생은 퇴근 후부터 시작되었고, 직장에 앉아 있는 하루의 9시간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 내 몸을 파는 꼴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간과 쓸개와 심지어는 뇌까지 빼서 고이 침대위에 올려두고 출근길에 나섰다.

머리가 굵어지고 사춘기를 거치면서, 가슴 속에서 떠오른 의문문 하나.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이것 이었다. 이것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일을 벌려 봤다.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자기 갈 길을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나에겐 왜 저런 것이 없을까 한탄하고 한탄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한 해결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간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된 일만 합니다. 우리 천복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이다. 학창시절 모든 선생님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고. 그렇다 그 단순한 사실을 간과한 채, 답이 어디에 있을까만 생각하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하면서도, 남들이 사는 것처럼 살려고 애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들이 하는 것, 남들이 가진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살면 행복해지겠지 라는 착각을 하기 일쑤다.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이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시작하니,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답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항상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해답을 찾는 출발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늘 이와 비슷한 것, 천복에 들어온 것과 같은 조그만 직관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걸 잡는 겁니다. 그걸 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바닥으로 그걸 인식할 도리밖에는 없어요."

답을 찾아도 많은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관성이 자꾸만 제자리로 끌어다 앉힌다. 대부분 그토록 원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한다. 두려움에 다시 주저앉고 또 다시 후회를 하고 괴로워한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할 수 없다고? 즐겁지도 않은 일을 평생하면서 밥만 먹고 사는 것과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앞에 두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진정으로 현실적인 선택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진로 문제로 인해 자신을 찾는 학생들에게 한 조셉 캠벨의 조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모르겠네. 남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아니면 대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

 

Posted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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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tsrot in flickr.com



가치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도덕이나 반드시 지켜야하는 원칙이 아니다.
사랑, 용기, 열정, 기여 등이 가치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 살아가는 것,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도 가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키며 살아나갈 때, 큰 기쁨과 성취감을 안겨주는 것이 가치이다.
따라서, 각자의 가치는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지닐 것이며, 자신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하게 될 것이다.
가치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코치와 고객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코치는 고객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 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고객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확실한 판단기준을 갖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한 결정은 당장은 괴롭고 힘들수도 있지만,
그것을 지켰을 때 결국은 큰 성취감과 기쁨을 얻게 된다.

이것이 성취에 있어서 가치의 힘이며, 가치를 규명해야할 이유이다.


Posted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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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OmbaTTa in flickr.com



성취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우리의 존재를 스스로 느끼는 순간이다.
성취에 대한 코칭은
고객안에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근본적인 존재감과 생명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코치는 고객이 성취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Posted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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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하는 남자의 코칭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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