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은 중요치 않다.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는 "코칭이 무엇이죠?"이다. 코칭으로 밥을 먹고 사는 코치이면서도, 나는 아직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내가 정말 코칭을 알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심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칭이라는 말은 너무나 많은 사람에 의해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언어의 속성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코칭의 본질이 왜곡되어 사용되는 것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코칭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으로 인식하면서 코칭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본질을 알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앞서 올린 세 편의 코칭컬럼이 그러한 역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나 역시도 항상 코칭의 본질을 왜곡하여 전하지 않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 나눈 이야기 대부분은 서점가에 코칭이란 타이틀을 쓰고 있는 책들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내용이다. 그만큼 코칭의 깊은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 책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코칭은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을 돕는다. 이는 곧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탐구를 전제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코칭을 자기계발의 새로운 버젼, 혹은 대화스킬, 커뮤니케이션 도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단지 전화거는 용도로만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의 본질과 가치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마치 코칭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는 코치라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내가 코치이기 때문에, 코칭의 탁월함과 가치를 강조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태도, 인간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을 뿐이다. 변화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지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원한다. 더 성장하길 원하고, 더 변화하길 원한다. 물론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그러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변화하고 성장하길 원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전문가, 자기계발의 전문가임을 주장하며 이러한 이들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어려움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의도는 좋았으나, 구조와 원리를 알지 못한 채 접근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세균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의사들이 시체를 해부한 손으로 산파역할을 해 수많은 산모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것처럼 말이다. 오로지 변화를 위해서는 개인이 노력과 의지가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양자 모두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둘째, 모든 문제의 해답은 문제를 가진 그 사람의 내부에 있다.
셋째,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코칭은 이 세 가지의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모든 것은 이것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전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없이는 결코 코칭이 이루어질리 없다. 그리고 이 세가지 전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안다면, 코칭이 단순한 도구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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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코칭의 3가지 전제:
셋째, 잠재력을 발휘하고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앞 서 다루었던 코칭의 첫 번째, 두 번째 전제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경계라고 표현한 이원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무게가 나가는 어찌보면 다소 심각한 주제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전제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앞에 했던 말과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며, 해답 또한 모두 그 안에 있는데 또 무슨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과거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코치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갖다 붙인 말이 아닌가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고 한다. 이 말은 코치들이 자신들의 필요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생각일 뿐이다. 이 세 번째 전제에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그렇다고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코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인(이건 단지 필자의 생각임)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은 자기기만이라는 주제를 상자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여 우리가 삶에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엄청난 실수들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자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주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말이다. 중요한 점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상자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비유적으로만 생각해보다라도 상장 안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은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며, 자신의 원하는 탁월한 삶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상자 안에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고도의 자기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스스로 자신이 상자 안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그 집단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살아도 좁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잠재력에 대한 상자, 가능성에 대한 상자, 행복에 대한 상자, 성공에 대한 상자가 모두 존재한다.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 안에서 상자 밖의 세상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상자 밖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낯선 것으로 비춰지는 것과 같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경계로 말해보자면, 경계를 긋고 그 중 한 쪽의 입장을 택한 상황이라면 다른 쪽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의 허물은 물론이며,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조차도 볼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관찰구조도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할 수는 없다. 개인은 세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어떤 것으로서 그 수준의 구조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인은 그런 구조들 자체를 전체적으로 지각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상위수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각각의 해석과정은 보지만 보여지지 않고, 해석하지만 그 자체가 해석되지는 않으며, 억압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억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켄 윌버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세상을 본다. 나의 잠재력을 보고, 세상의 무수한 가능성을 보고, 널려 있는 가능성을 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무엇이든 관찰하는 주체는 자신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은 보고, 무엇은 못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그가 보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그에게는 진실이다. 상대방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눈에는 쉽게 보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가능성과 기회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세상에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택의 기회를 보기는 커녕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결코 보지 못하는 곳이 있는 것은 아닐까?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흔들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성공과 부를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분명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코치는 다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고 이를 코치 입장에서 설명하여 함께 문제 접근 방식을 의논하는 것이다" - 에릭 슈미트.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코칭을 받아보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서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처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무슨 코치를 받느냐는 생각에서 였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 코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우리는 어디가서 코칭을 좀 받으라는 말을 들으면 에릭 슈미트가 이해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그런 뜻으로 말한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는 코칭 경험하고, 코치의 필요성을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관련 영상을 이안나 코치님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coachingisland.com/257) 코치가 하는 일은 어디로 가라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앞만 보고 가는 고객이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위, 아래를 쳐다 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가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곳을 보는것, 그것이 바로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파트너로서의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결코 몰랐던 세상, 몰랐던 차원이 존재함을 깨닫기 위해서 코치라는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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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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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하는 남자의 코칭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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