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을 공부하다 보면 유독 추상적인 내용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코치는 고객이 자신을 믿는 것보다 더 그를 믿는다.
코치는 코칭 대화 중에 판단없는 경청을 해야 한다.
코치는 고객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대단히 추상적인 내용들이다. 추상적인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거울"과 같은 비유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추상적이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추상적인 내용 때문에 코칭훈련이 더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코칭훈련이 어렵다는 말은 훈련 자체가 어렵다는 말 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코치는 고객이 자신을 믿는 것보다 더 그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러한 상태가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알기 힘들다. 그런 상태를 알 수 없으니,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훈련해야 하지는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판단없는 경청도 마찬가지이다. 코치에게 필요한 역량 중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판단없이 경청하는 능력은 코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량이다. 그런데, 역시 마찬가지이다. 판단 없이 듣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판단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고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닌데 말이다.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의 코칭훈련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내용들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텍스트 그 자체를 전할 뿐이다. 내가 처음에 참가했던 훈련프로그램에 있었던 일이다. 거기서도 역시 판단없는 경청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했던 사람들은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판단없는 경청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트레이너는 참으로 저렴한 대답을 해주었다. "판단없는 경청이요? 책에는 그렇게 나왔는데, 그게 사실 도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나 할 수 있는것 아니겠어요? 저도 그게 뭔지 잘 모릅니다. " 그 뒤에 이어지는 멋적은 웃음.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내용과 말의 뉘앙스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런 무책임한 훈련이 어디있단 말인가?

분위기가 대충 이러하니, 대부분은 코치들 역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만다. "그냥 아주 어려운거구나, 진짜 고수나 되야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런 추상적인 내용은 대부분이 코치의 기본, 코칭의 본질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고수가 될 때까지 넋놓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 알 때까지, 경험하지 못했으면 경험해서 숙달이 될 때까지 공부하고 훈련해야 할 부분이다.

만약 누군가가 코치인 내게 "코치들은 판단없는 경청을 한다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무엇인가요?"하고 묻는다면, "그건 고수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전 하수라서 그런거 모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는 않다. 전문가로서 체면이 깍여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이해도 없이 코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되어서이다. 그것은 곧 코칭이 뭔지 모르면서, 코칭을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등한시하기가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니,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곳에서 바로 고수가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린다고 본다. 정말 중요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을 확실히 했을 때, 훗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굳이 뭘 더 얻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기본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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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셋째, 잠재력을 발휘하고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앞 서 다루었던 코칭의 첫 번째, 두 번째 전제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경계라고 표현한 이원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무게가 나가는 어찌보면 다소 심각한 주제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전제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앞에 했던 말과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며, 해답 또한 모두 그 안에 있는데 또 무슨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과거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코치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갖다 붙인 말이 아닌가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고 한다. 이 말은 코치들이 자신들의 필요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생각일 뿐이다. 이 세 번째 전제에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그렇다고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코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인(이건 단지 필자의 생각임)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은 자기기만이라는 주제를 상자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여 우리가 삶에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엄청난 실수들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자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주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말이다. 중요한 점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상자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비유적으로만 생각해보다라도 상장 안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은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며, 자신의 원하는 탁월한 삶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상자 안에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고도의 자기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스스로 자신이 상자 안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그 집단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살아도 좁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잠재력에 대한 상자, 가능성에 대한 상자, 행복에 대한 상자, 성공에 대한 상자가 모두 존재한다.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 안에서 상자 밖의 세상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상자 밖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낯선 것으로 비춰지는 것과 같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경계로 말해보자면, 경계를 긋고 그 중 한 쪽의 입장을 택한 상황이라면 다른 쪽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의 허물은 물론이며,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조차도 볼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관찰구조도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할 수는 없다. 개인은 세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어떤 것으로서 그 수준의 구조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인은 그런 구조들 자체를 전체적으로 지각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상위수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각각의 해석과정은 보지만 보여지지 않고, 해석하지만 그 자체가 해석되지는 않으며, 억압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억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켄 윌버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세상을 본다. 나의 잠재력을 보고, 세상의 무수한 가능성을 보고, 널려 있는 가능성을 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무엇이든 관찰하는 주체는 자신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은 보고, 무엇은 못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그가 보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그에게는 진실이다. 상대방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눈에는 쉽게 보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가능성과 기회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세상에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택의 기회를 보기는 커녕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결코 보지 못하는 곳이 있는 것은 아닐까?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흔들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성공과 부를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분명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코치는 다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고 이를 코치 입장에서 설명하여 함께 문제 접근 방식을 의논하는 것이다" - 에릭 슈미트.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코칭을 받아보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서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처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무슨 코치를 받느냐는 생각에서 였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 코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우리는 어디가서 코칭을 좀 받으라는 말을 들으면 에릭 슈미트가 이해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그런 뜻으로 말한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는 코칭 경험하고, 코치의 필요성을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관련 영상을 이안나 코치님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coachingisland.com/257) 코치가 하는 일은 어디로 가라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앞만 보고 가는 고객이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위, 아래를 쳐다 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가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곳을 보는것, 그것이 바로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파트너로서의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결코 몰랐던 세상, 몰랐던 차원이 존재함을 깨닫기 위해서 코치라는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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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두번째, 문제의 해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박신양, 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 1회를 보고나서 재미있다 싶으면, 결국 전 편을 다 보고 말아야하는 몹쓸 습관이 있었던 나는 그 드라마 역시 전 편을 다봐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는 예상치 못했던 참으로 아리송한 결말에 큰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드라마였다. '애기야~'를 연신 외쳐대며 핑크 돼지 저금통을 들고 브라운관을 누비던 한기주(박신양)의 멋드러진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드라마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형수가 될 태영(김정은)에게 품어서는 안될 마음을 품었던 한기주의 동생, 윤수혁(이동건)의 고백장면이 아닐까? 그 장면에서 그가 태영에게 던진 기가막힌 대사 한 마디는 당시 대한민국 뭇여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리기에 충분했었다. 바로 '이 안에 너 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며 그런 엄청난 멘트를 날리던 그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기 그지 없었다. 한 동안 그 한 마디는 전국민적인 유행어였었음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코칭이라는 것을 안지 얼마되지 않아 이 대사 못지 않게 기가 막힌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코칭의 3가지 전제 중 그 두번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가 그것이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하고 어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문장이었다. 어쨌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 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가슴 뛰게 만드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 혹은 환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 또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말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생긴 문제라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이는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은 당신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안에 해답이 있으니,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대단히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이 두번째 전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의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전제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들은 설명은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매순간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방대한 향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바다 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된다.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빙산의 일각을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바다 속에 잠겨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밑부분을 흔히 우리의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 무의식의 영역은 무한한 정보와 잠재력이 저장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는 그 사람이 스스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코치는 그것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그 거대한 무의식에서 건져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코칭을 통해 그곳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찾는 '해답'이다. 이러한 설명 또한 매력적이었으며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칭을 직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전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할 때, 먼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곧바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한시라도 빨리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답을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기 쉽다.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께 자주 듣던 말이 하나 있다. 수 많은 시험을 볼 때마다 매번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바로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 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답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와 답은 입자와 파동의 모습을 함께 지닌 소립자와 같이 인간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진 하나인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답을 찾아 나서기 이전에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문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도 가능하면 껍질을 벗길대로 벗겨 가장 속 알맹이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문제는 항상 밖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안의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이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점은 곧 입장을 만들어낸다. 입장은 경계의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함에 의해서 발생한다. 결국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입장을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입장 혹은 다른 관점을 취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일 뿐, 놓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오로지 관점의 전환만을 외쳐댄다). 이는 곧 그러한 관점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답도 결국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결국 나도 모르게 그어져 있던 경계를 포기하는 것, 경계를 통해 갖게 된 나의 관점을 놓아버리는 것 뿐이다. (짧은 글로 핵심을 전하려 하다보니 양적인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설명을 원한다면 켄 윌버의 '무경계' 또는 '의식의 스펙트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경계를 지키면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며, 그 상태는 그저 문제의 일시적인 해결, 또는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문제가 바로 뒤따라오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겪는가? 취업난으로 취직이 그 옛날 장원급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올 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는, 나중에 그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돈을 내고 코칭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삶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로 우리가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진짜 해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참 뒤늦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완전한 탈출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씨앗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사랑하는 그녀가 아닌, 경계이다. 그것이 곧 내 안에 있는 유일한 문제이자, 동시에 유일한 해답이 아닐까? 문제와 해답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p.s: 그리고,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그 명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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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Hello, World" 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 번이라도 공부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progamming language) 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Pascal, COBOL, C, C++, JAVA, JSP, ASP, PHP, Ruby, Python 등 프로그래밍 언어는 그 종류가 수십 종에 달할만큼 다양하다. 어떤 언어든지 처음 배우면서 공통으로 시작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Hello, World'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실행했을 때 화면에 "Hello, World"라는 문장을 출력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마친다. 그야말로 프로그래밍의 첫 걸음마를 떼는 간단한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cearta.ie/2007/01/hello-world/

코칭에도 이 Hello, World와 비슷한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이 바로 '코칭의 3가지 전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책이나 훈련프로그램에 따라 하는 말들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좀 더 깊은 차원에서 보자면 모두 이 3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해서 코칭의 근본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 3가지 전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둘째, 문제의 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셋째, 잠재력을 발휘하고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럼 Hello, World 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이 이야기를 왜 또 하려는 것인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이, 가장 처음에 배우는 것들, 기본 중의 기본, 단순한 것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고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가장 기본적인 것의 의미를 진짜로 알고 있느냐 없느냐를 알아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대답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은 바로 "코칭이 무엇이가요?"라는 질문이다. 코칭을 시작한 후부터 수 없이 받아온 질문이고 매번 그 당시의 나의 이해 수준에서 적절한 답변을 해주지만, 항상 내가 정말 코칭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라는 꺼름직한 의문이 뒤따라온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 3가지 전제도 그 진정한 의미를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오랜 시간 학습을 하고 연구를 거듭하면서 이것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져 간다는 것을 느낄 뿐이지 아직도 내가 이것의 진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해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탐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미를 제대로 알면 무엇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말 그대로 코칭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하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단지 코치 뿐만 아니라 코치이(고객)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무엇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코칭도 마찬가지이다. 코칭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둘째치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코칭인지 코칭이 아닌지도 모른채 코칭을 한다고 하는 크나큰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지금도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칭이 아닌 것을 하며 코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코치들 사이에서 유사코칭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이니 말이다.

코칭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리더십의 새로운 대안으로 코칭을 언급하고 있다. 당연히 여러 코칭회사를 통해 많은 수의 코치들이 배출되고 있으며, 그들은 기를 쓰고 코칭을 잘 하기위해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 정작 코칭이 무엇이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탐구를 하는 사람은 많이 보질 못했다.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부실공사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말이다. 코칭의 3가지 전제가 지닌 깊은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코칭,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코칭이고, 무엇이 코칭이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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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하는 남자의 코칭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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