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의 3가지 전제:
두번째, 문제의 해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박신양, 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 1회를 보고나서 재미있다 싶으면, 결국 전 편을 다 보고 말아야하는 몹쓸 습관이 있었던 나는 그 드라마 역시 전 편을 다봐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는 예상치 못했던 참으로 아리송한 결말에 큰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드라마였다. '애기야~'를 연신 외쳐대며 핑크 돼지 저금통을 들고 브라운관을 누비던 한기주(박신양)의 멋드러진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드라마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형수가 될 태영(김정은)에게 품어서는 안될 마음을 품었던 한기주의 동생, 윤수혁(이동건)의 고백장면이 아닐까? 그 장면에서 그가 태영에게 던진 기가막힌 대사 한 마디는 당시 대한민국 뭇여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리기에 충분했었다. 바로 '이 안에 너 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며 그런 엄청난 멘트를 날리던 그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기 그지 없었다. 한 동안 그 한 마디는 전국민적인 유행어였었음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코칭이라는 것을 안지 얼마되지 않아 이 대사 못지 않게 기가 막힌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코칭의 3가지 전제 중 그 두번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가 그것이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하고 어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문장이었다. 어쨌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 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가슴 뛰게 만드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 혹은 환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 또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말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생긴 문제라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이는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은 당신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안에 해답이 있으니,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대단히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이 두번째 전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의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전제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들은 설명은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매순간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방대한 향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바다 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된다.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빙산의 일각을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바다 속에 잠겨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밑부분을 흔히 우리의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 무의식의 영역은 무한한 정보와 잠재력이 저장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는 그 사람이 스스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코치는 그것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그 거대한 무의식에서 건져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코칭을 통해 그곳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찾는 '해답'이다. 이러한 설명 또한 매력적이었으며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칭을 직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전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할 때, 먼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곧바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한시라도 빨리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답을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기 쉽다.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께 자주 듣던 말이 하나 있다. 수 많은 시험을 볼 때마다 매번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바로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 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답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와 답은 입자와 파동의 모습을 함께 지닌 소립자와 같이 인간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진 하나인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답을 찾아 나서기 이전에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문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도 가능하면 껍질을 벗길대로 벗겨 가장 속 알맹이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문제는 항상 밖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안의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이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점은 곧 입장을 만들어낸다. 입장은 경계의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함에 의해서 발생한다. 결국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입장을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입장 혹은 다른 관점을 취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일 뿐, 놓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오로지 관점의 전환만을 외쳐댄다). 이는 곧 그러한 관점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답도 결국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결국 나도 모르게 그어져 있던 경계를 포기하는 것, 경계를 통해 갖게 된 나의 관점을 놓아버리는 것 뿐이다. (짧은 글로 핵심을 전하려 하다보니 양적인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설명을 원한다면 켄 윌버의 '무경계' 또는 '의식의 스펙트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경계를 지키면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며, 그 상태는 그저 문제의 일시적인 해결, 또는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문제가 바로 뒤따라오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겪는가? 취업난으로 취직이 그 옛날 장원급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올 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는, 나중에 그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돈을 내고 코칭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삶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로 우리가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진짜 해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참 뒤늦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완전한 탈출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씨앗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사랑하는 그녀가 아닌, 경계이다. 그것이 곧 내 안에 있는 유일한 문제이자, 동시에 유일한 해답이 아닐까? 문제와 해답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p.s: 그리고,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그 명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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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코치

부제: 문제해결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사람구실을 하며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성적이 안나오는 것도 문제고, 경제상황에 좋지 않아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취업을 해도 한 직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가 힘들다 하니 그것 또한 문제입니다.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속을 썩이는 것도 문제고, 자식이 혹은 부모가 속을 썩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남들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문제고, 남들보다 학벌이 안 좋은 것도 문제고, 남들보다 직장이 안 좋은 것도 문제고, 돈을 많이 벌어도 사는게 재미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것도 문제고, 몸짱이 아닌 것도 문제고, 더 비싼 옷, 더 비싼 차를 사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도무지 지금 닥친 문제는 고사하고 앞으로 생길 수많은 문제들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것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인생이 높고 험난한 산을 하나씩 넘어가는 과정같이 느껴집니다. 하나 넘으면 더 높은 것이 나오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산 말입니다.

이렇게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겪다보니 사람들은 문제를 풀기 싫어합니다. 되도록이면 문제를 만나지 않고 피해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요즘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문제를 만나면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고치고 나면, 그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해결되었다기보다는 '해결된 것 처럼 보인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쉬운 예로 벌써 몇 년째인지도 기억하기 힘든 취업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취업하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래도록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간단한 답을 내립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답이다.  그래서 그 답을 얻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일까요? 겉으로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맥락을 확장시켜 직업이라는 것을 갖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업을 갖는 근본적인 이유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혹 자신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먹고 사는 것 부터가 행복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경제상황이 안 좋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간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닌 문제를 키운 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이유 중 몇 가지를 짚어볼까 합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문제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혹은 진짜 문제라는 것은 무엇인지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긍정적인 관점와 부정적인 관점에 대한 예를 들 때, '물 반 컵'의 비유를 듭니다. 정확히 컵의 절반 만큼 들어 있는 물을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있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물이 반이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고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에겐 그것이 문제로 인식되는 반면, 다른 이에겐 문제가 아닌 기회로 인식됩니다. 이 비유를 보면 인간이 만들어 낸 많은 문제는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내부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컵에 물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은 문제인가?"라는 것입니다. 앞서 든 예에서와 같이 인간의 관점을 긍정과 부정, 두 가지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이는 분명 어느 관점을 갖느냐와 상관없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결국 긍정적인 사고라는 것도 어느 상황에서나 다 통하는 것 같지는 않아보입니다.

이는 인간이 세상을 보는 이분법적 혹은 이원적 관점, 그 자체가 지닌 한계입니다. 또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계발 분야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변화하길 원하고 성장하길 원합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본성의 일부가 현대적인 맥락으로 발현된 것을 지금 우리는 '자기계발'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의 자기계발은 이처럼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자연스러운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미처 대중들은 문제로 인식하지도 않던 것들을 문제로 만들어가며, 그 문제들에 대한 일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느라 급급하다는 느낌입니다. 근본적인 잠재력을 개발하기는 커녕, 수많은 문제들을 힘겹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일까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것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양자론이 전하고 있는 가장 충격적인 통찰 중의 하나인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은 이에 대한 크나큰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의 물 반 컵의 예에서처럼 인간은 반드시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렇다면, 둘 다 선택하거나 혹은 둘 다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순한 인과론적 사고 역시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임시방편의 해결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더 많은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초등학교 학급의 면학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이 학교에 핸드폰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수업시간에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거나, 학생들이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취한 조치입니다. 과연 학생들이 핸드폰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한다고, 아무도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고 면학분위기가 좋아질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들 간의 연락체계 단절과 같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부작용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는 사회적인 현상이나 제도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들 역시 자신이 떠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짜 원인도 아닌 것을 원인으로 생각하며 이를 교정하는데 전력을 다합니다. 하지만, 맥락이 조금만 확장되면 그것이 진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더욱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사실 원인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해 개봉했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보신 분이라면 주인공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드)의 상대역인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입원한 데이지를 찾아가며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과정을 들려주는 벤자민의 독백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문제들의 원인은 결국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의 지난 블로그 포스트(http://choicoach.com/196)를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맥락의 확장은 결국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위와 같은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작게는 자기계발, 크게는 인생에 있어서 그동안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었던 접근방식에 대해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인생이란 것이 살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을 그때 그때 해결해나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 말입니다. 혹은 우리가 그 동안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문제가 아닌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 되었건 누구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그것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길 원할 것입니다. 현재 양자론을 비롯한 최신과학 이론들은 하나 같이 그동안 우리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왔던 수 많은 견해들을 뒤흔들며, 이전엔 결코 풀기 어려웠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풀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변화와 성장과 관련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잠재력 개발 분야에서도 최전선에 서있는(필자의 개인적 견해임) 코칭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필자 또한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그 변화의 물결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마음을 열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문제해결의 차원을 넘어 근본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자의 위치가 언제나 동일한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되며, 또 "전자의 위치가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가 어떤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에서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되며, "전자는 정지해 있는가 어떤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된다. 그러면 "그것은 운동하고 있는가 어떤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우리는 역시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 Robert Oppenheimer

Posted by 최코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변화에 대해 말합니다. 변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작은 변화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하며 좌절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에서, 그리고 전문가들이 변화의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도 코치의 길을 걷기로 결정을 한 후, '과연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칭은 3가지의 기본 철학를 기반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코칭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이 3가지 기본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 중 첫번째는 바로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치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꽤 긴 시간의 코치훈련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이 전제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렇다는 믿음만 갖고 있을 뿐 그 가능성과 잠재력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뚜렷하게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 하나가 그것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치가 되어 걷는 길에서 시작부터 만나게 된 커다란 벽을 하나 허무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그 큰 벽을 허물어 준 단어는 바로 "에너지"였습니다. 에너지. 꽤 오랜 시간동안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저에게 이 단어는 분명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 하나로 인간의 변화에 대해 품었던 꽤 많은 궁금증들을 풀어 낼 수 있었습니다.

과학에는 무슨무슨 법칙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에너지 보존 법칙'입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바로 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열이 에너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조차도 열을 에너지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열을 그저 하나의 화학작용으로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마이머, 헬름홀츠, 줄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열을 포함해 에너지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그것들은 다른 종류로 변환될 수 있지만,  모든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에너지 보존 법칙의 내용입니다. 이후 1905년 아인슈타인은 E=mc^2이라는 유명한 공식을 발표합니다. 질량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상호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에너지 질량 보존 법칙'이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변화'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변화의 근본은 결국 에너지의 변환으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변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거나 그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변환이라는 관점에서 본 변화와 인간의 변화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코칭의 첫번째 철학에서 언급한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도 이를 바탕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전제는 단지 코칭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을 업으로 삼고 있는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기본 전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잠재력, 가능성, 또한 변화의 본질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에너지"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코칭이라고 하면 대부분 대화모델을 기반으로 한 방식의 코칭을 말합니다. 질문과 경청을 기반으로 한 대화위주의 코칭에서도 코치와 고객 간에는 에너지 교류가 이루어지며, 에너지의 개념을 몸으로 알고 있는 코치라면 반드시 이를 염두해 둘 것입니다. 하지만, 고객의 잠재력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분명 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부 코치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에너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에너지 기반의 코칭은 물론이고, 이를 넘어 의식기반의 코칭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돕는 방법을 찾던 중, 에너지와 의식 기반의 코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SK(Specialized Kinesiology)는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의 접근을 보완하여, 인간을 디지털 정보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서 이러한 시도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변화는 여러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그 차원에 맞는 방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코치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을 하는 대중들 역시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런 폭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 중에서도 변화의 근본을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변화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매번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몰랐던 그들의 성공의 비밀 등 많은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들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최코치

자기계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졌다. 자기계발이라는 말은 그 범위가 너무 넓다. 독서를 하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것, 또는 다이어트를 해 살을 빼는 것도 모두 일종의 자기계발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자기계발이라는 것의 범위를 '변화와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의 자기계발 분야에서 이 키워드와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 영역이라고 한다면 '자기경영' 또는 '셀프리더십'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일단 이 영역의 현실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자기계발을 하는가? 당연히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즉, 변화하고 싶고 더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의 밑바탕에서는 자신 안에 아직 사용하지 않고 남아있는 잠재력에 대한 인정이 자리잡고 있다. 자신에게 더 나은 삶을 살수 있는 잠재력 혹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이건, 강의를 하는 사람이건 자기계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주변에 보면 자기계발 서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의 상당수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뻔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대로 해봤자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계발의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들의 말이 모두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저 단순한 편견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그들의 말처럼 대부분 자기계발 서적은 뻔한 내용이다. 그 뻔한 내용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죽도록 노력해라. 그럼 성공할 것이다.", "정말 간절히 원해라. 그럼 성공할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그럼 성공할 것이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의 핵심주제를 한 문장으로 한다면 상당히 많은 책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될 때까지 노력하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책을 쓰고 강의를 한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뻔한 말을 듣기 위해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단지 "당신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쓰는 방법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그냥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내가 그 증거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자기계발 무용론자들의 주장처럼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성공하기 힘들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들은 그들만의 방법이고 단지 하나의 모델 혹은 사례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대로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방법을 제시하며 그대로 하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단순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자기계발 책을 읽고, 혹은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실제 삶에서 변화와 성장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면 된다. 성공의 법칙을 전해 듣고서, 실제 성공한 사람들이 몇 명인가를 보면 된다. 한 마디로 성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대부분의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대중이 보기에 혹할 만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박사학위, 유학파, 각종 자기계발 프로그램 수료증, 강사 자격증, 무슨 협회 회원 등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이 되어있다. 그리고 국내 수많은 기업에서의 강의경력 등이 옵션으로 따라 붙는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들이 어떠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권의 책을 내고, 몇 군데에서 강의를 했다는 것을 가지고 성과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들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난 후 삶에서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상하지 않는가? 전문가가 내세울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과"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볼 수 없는 전문가가 너무나 많다.

어떤 전문가는 오로지 자신의 성공 스토리만을 내세운다. 국내 한 전문가의 강연을 두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두 번의 강연주제는 모두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강연자는 두 번의 강연에서 모두 같은 내용의 강의를 했다. 그 내용은 자신의 성공 스토리였으며, 정작 두 개의 강연주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자신은 본인의 성공스토리 뿐만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을 만큼 학문적인 배경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건,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했건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계발의 전제인 인간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의 계발, 그것을 이뤄낼 수 있냐 없느냐일 뿐이다. 바로 그 사람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진짜 변화를 이루었는가일 뿐이다. 많은 대중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도 변화하지 않는다. 수 백권의 책을 읽고도, 수 백만원 어치의 강의를 듣고도 감을 잡지 못해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변화에 실패한 그들에게 말한다. "죽도록 해야된다니까요. 내 말 안들으니깐 실패하지.". 혹은 "이번에 Basic코스를 마쳤으니, Advanced를 들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대중은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또다시 실망하며 좌절한다. 결국 그들은 자신안에 잠재력 같은 것은 있지 않다는 확신을 더 강하게 갖게 될 뿐이다. 성공하기 위해 했던 자기계발이 오히려 성공으로부터 영영 멀어지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부적절한 접근방식으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기본 전제가 있다면, 모든 것은 그 기본 전제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계발의 기본 전제가 "모든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면, 자기계발의 모든 방법과 과정 역시 그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 주체는 누구이어야 할까? 소위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다. 그 주체는 철저히 당사자 본인이어야 한다. 쉽게 말해 전문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그런 방법이 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그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을 때, 때마침 그를 만났기 때문일 뿐이다.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 것이며, 아내 혹은 남편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다른 누군가가 한 사람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경험대로 하라고 시키거나, 성과에 대해 확신할 수도 없는 이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그 사람 스스로가 변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 뿐이다. 그 사람은 이미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록하고 의학에서는 약을 쓰는 약의藥醫보다는,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식의食醫를 높이 평가하며, 그보다는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치는 심의心醫를 높게 평가한다. 즉, 환자에게 처방을 하기 보다는, 마음을 다스려 본래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그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의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변화와 성장은 자연과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간이라고 해서 가지고 있지 않을리 없다.

기존의 자기계발이 보는 또 하나의 한계는 바로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변화와 성장에 있어서도, 인간의 관심사는 대부분 자신들이 떠안고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돈을 더 버는 방법을 찾고,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니 더 잘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외모가 불만스러우니 더 예뻐질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란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문제 몇 개 해결한다고 해서, 행복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언제 어느 순간에 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제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서 그에 맞는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한 번쯤 이런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정말 문제인 것이 맞는가?". 헷갈릴지 모르겠다. 쉽게 말해, 당신이 줄곧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은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를 문제로만 본다면, 인간은 평생토록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 인생을 바쳐야 할 것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은 그저 다음 번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의 기간일 뿐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말이다. 우리는 의심하고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지금껏 진실이라고 철썩같이 믿어왔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었던 때는, 단지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했다고 믿던 사람들이 살았던 때뿐 만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문제가 사실 문제가 아니라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Posted by 최코치

인디언 신화 - 뉴욕 공립 도서관 (당시 나이 10세, 11세부터 성인 도서 서가 출입)
생물학 - 캔터베리 예비학교
생물학, 수학 - 다트머스 칼리지
영문학, 비교문학 - 콜롬비아 대학
힌두교, 불교, 동양철학에 관심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난 후
중세문학 (아더왕 전설 연구) - 콜롬비아 대학원
로망스어, 중세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문헌학 - 소르본 대학
현대미술(피카소, 브라크)에 관심 - 소르본 대학
현대문학(예이츠,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에 관심 - 소르본 대학
산스크리트어, 인도-유럽어족의 언어 - 뮌헨대학
괴테, 토마스만, 프로이트, 융의 작품을 접함 - 뮌헨대학
러시아어 - '전쟁과 평화'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
슈펭글러, 토마스만, 융, 조이스, 프레이저 - 캔터베리스쿨 교사
역사, 영어, 불어, 독어를 가르침 - 캔터베리스쿨 교사
문학, 독일철학, 비교신화학 - 사라 로렌스 대학 교수
하인리리 침머 - 볼링겐시리즈 편집자

위의 목록은 한 사람의 평생토록 공부했던 학문들을 리스트로 정리한 것입니다. 맨 윗줄을 보면 10세 때부터 공립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1살이 되어서는 성인 도서 서가 출입을 하게 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어린이 서가에 있는 책을 모두 섭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더 볼 책이 없어진 것이었죠. 그래서 특별히 도서관의 허락을 받아 어린 나이에 성인 서가를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힌두교, 불교, 동양철학 등 종교와 철학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인 언어입니다. 그는 로망스어, 중세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신스크리트어 등을 공부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 러시어어를 공부했습니다. ^^;; 그리고 또 영어, 불어, 독어를 가르치기도 했군요. 거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정확히 이 사람의 지능지수는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듣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꾸준히 즐겁게 공부한 학자였을 뿐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를 4시간씩 4개의 덩어리로 나누었습니다. 총 16시간을 사용한 것이죠. 그 중 하나는 휴식에 썼습니다. 나머지 세 개는 책을 읽는 데 썼습니다. 이 사람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언어와 학문을 익힐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립니다.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세계 최고의 비교신화학자로 불렸던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몇 번 이 분과 이 분의 작품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요즘 제가 공부하는 것들이 생각났습니다. 코치가 되어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와 성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많은 학문과 기술을 접하고 있습니다. 정말 평생토록 결코 들쳐 볼 것 같지 않았던 책들도 꽤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것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학생때도 지금처럼 공부했다면, 지금쯤 뭐가 되었을지 궁금해집니다. ㅎㅎ 하지만, 조셉캠벨에는 아직 비할 바 아닙니다. 저도 평생을 한다면 저 정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죠셉캠벨은 대부분을 책을 통해 공부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참 외롭고 힘든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행복했습니다. 대공황 때는 그도 직업이 없어, 밤마다 밴드생활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가 평생을 한 길만 보여 우직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항상 외쳤습니다. "Follow your bliss !!!". 내면의 기쁨을 따르라고요. 이제는 저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압니다. 제가 가는 길은 그렇게 매력적입니다. 그가 흔들림없이 갈 수 있었던 그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말하면서도, 자꾸만 그렇지 않은 쪽으로만 가는 듯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 갑니다. 남들이 옳다하면 그것이 옳다 여깁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죠셉 캠벨의 <신화의 힘> 중에서

Posted by 최코치



인류학자(Anthropologist)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의 틀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문화인류학 분야의 명저이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1944년 미국 국무성의 위촉으로 연구를 시작한 저자가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 일본 문화를 연구하여 세계적인 명저를 내놓았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은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더 엄밀하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부분적인 체험은 전체를 보기보다는 오히려 전체적인 관찰을 방해하기 쉬운 것이다.

또한 일본에 관해 일본인이 연구하거나, 한국에 관해 한국인이 연구하는 것은 자칫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채 넘기기가 쉽기도 하다. 마치 우리가 항상 호흡하는데 사용하는 공기의 존재를 늘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안경의 경우 안경을 쓴 당사자가 렌즈의 처방을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국민이 자기의 세계관을 분석하는 데 기대를 걸 수가 없다....(중략)...우리는 사회과학자의 직업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현대 세계의 여러 나라 국민에 관해 이 안과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니 루스 베네딕트가 책을 쓰기 위해 일본을 연구한 방식이나, 문화인류학에 대한 그녀의 정의가 코칭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코치는 고객의 과거나 사생활을 깊이 탐구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고객의 모든 체험을 다시 경험해보려는 것처럼 과거사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현재의 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라이프 코칭의 경우 고객의 전반적인 삶의 영역을 두로 다루는 것이 원칙이기도 하지만, 이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코치가 고객의 마음속에 들어가 고객의 모든 것을 느끼고 체험하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고객이 스스로 코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방문한 적 없이 철저하게 일본 밖에서 일본을 연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녀 역시 책을 통해 일본의 모습을 마치 거울과 같이 비춰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문화인류학자를 안과의사로 비유한 것은 코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코칭의 기본 전제는 고객이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찾아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안경을 쓰고는 있지만, 자신이 쓰고 있는 렌즈의 처방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라는 상호책임의 파트너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처방은 코칭의 과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코칭에서는 처방하지 않는다. 코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고객이 탁월한 셀프코치가 되는 것이다. 코치가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훌륭한 코치가 되기를 바란다. 즉, 코칭고객은 안경을 쓴 안과의사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문화인류학은 연구하는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어떠한 독립된 행동도 서로 체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코칭은 주로 판단없는 경청과 강력한 질문을 통해 진행된다. 특히 코칭에서 경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뿐더러, 경청은 모든 다른 기술들의 전제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깊은 경청 중에 코치는 고객의 말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것들을 듣게 된다. 말하는 순간의 감정이나 표정, 제스처, 가능하다면 에너지의 흐름까지 모든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경청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순간 어느 하나도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고 고객을 드러낸다. 단지 코칭세션 중의 경청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코칭과정 중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되는 모든 정보는 그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고객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코칭을 결국 통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코칭 초기에 고객이 밝힌 코칭이슈는 물론이며, 고객의 삶의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것이 어느 하나만으로 그 만족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칭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 문화인류학은 개인이 모여 이룬 조직,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이다. 개인과 공동체, 그 대상은 다르지만 근본은 역시 인간이다. 그런 면에서 코칭과 문화인류학이 많은 공통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코칭과의 연관성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책 속에서 코칭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인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좋은 소스를 찾은 것이다.

 

Posted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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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하는 남자의 코칭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 by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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