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이것들은 미래에 있다. 우리는 아직 성공하지 않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현재로부터 출발해 저 먼 미래에 위치해 있는 "성공"과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 생전에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이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방법이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취한다. 서점에는 눈과 손을 잡아끄는 현란한 문구로 치장한 책들이 우릴 유혹하고, 별 영양가 없는 몇 만원짜리 강의부터 수 백만원에 달하는 자기개발 프로그램까지 수많은 노하우들이 난무한다. 매번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크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기에 우리는 다시 그것들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는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것이 나에게는 그다지 영양가 없었음을 인정하기 싫지만, 결국 인정해야 하는 때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랴. 탓할 사람은 없다. 오로지 내가 못난 탓이 아니던가? 의지력이 약하고, 끈기가 없는 나의 탓일 뿐이다. 그래도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지는 않은데, 매번 제 자리 걸음인 것 같아 마음이 한 없이 답답하다.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성공과 행복을 대하는 태도이다.
갖가지 자기계발, 성공론, 행복론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수많은 이들이 성공과 행복의 전문가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앞다투어 관련 상품들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적어도 나(여러분 자신)에게만큼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처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한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지력이 강하고, 끈기가 있는, 즉 뼈빠지게 노력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자들에게만 유용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같이 의지박약의 인물에게는 그림의 떡 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친절하게도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안내해주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 길을 걸어갈 힘이 없다. 그것이 문제이다. 방법은 많으나 정작 나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나에게도 통하는 다른 방법이 한 가지는 있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에 의지해 또 다른 것을 찾아 오늘도 해메이는 것뿐이다. 그러한 방법이 정말 있을까?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 그것을 찾아내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미천한 견해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성공과 행복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철저하게 다시 파해쳐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그 목적지에 '성공' 또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원하는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의지나 끈기,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연료인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연료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성공론, 행복론, 자기개발론은 이러한 연료가 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그 연료를 아낌없이 불사르라고 외치는 다소 기괴한 모습의 이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몸이 쇠약해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열심히 운동하라고 외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연료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이 지금 많은 사람이 풀고 싶은 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기본 전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진짜 문제는 행복과 성공을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로 설정하는 것이 문제이다. 100억의 돈을 버는 것은 먼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100억이 곧 성공이며, 행복이라는 '100억=행복=성공'의 공식은 틀린 것이다. 아파트를 사는 것은 미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행복=성공'의 공식을 잘못된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 인기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은 도달해야 될 목적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기와 명예=행복=성공'의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료, 즉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지금껏 의지, 노력, 끈기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게 그러한 연료가 없어 보인다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 난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껴야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간단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와 끈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던 그 밑의 근본적인 에너지, 그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뼈를 깎는 고통을 오로지 의지력에 의해 견디어 낸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힘들다. 혹은 그렇게 도달한다 한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꿈에 그리는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도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연비가 높은 연료이다. 우리가 노력이라고, 의지력이라고, 끈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에너지에 대해 붙은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고, 그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껴야 노력도 할 수 있는 것이며, 의지력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다.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오로지 행복을 목적으로만 설정함으로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리 재미없는 것, 혹은 더 나아가 매우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로지 자신의 하찮은 의지력으로 모든 승부를 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의 승률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력한 의지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라.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경우만 돌아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즐기는 자를 따를 자는 없다는 공자의 말이 어떤 의미일지 다시 한 번 새겨보기 바란다. 이것은 자기계발의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그렇지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원리이다.
